[한라일보] "엄마 아빠 때문이야." 아이의 잦은 이 말에 부모는 걱정이 듭니다. 뭐든 맘대로 안 될 때마다 남에게 문제를 돌리는 것 같아서인데요. 이럴 때 아이의 발달 단계를 알고 있다면 괜한 걱정보다 그 이유를 잘 이해할 수 있다고 합니다. 자기 주도성은 살리면서 바른 아이로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질문. 일곱 살 아이를 키우고 있어요. 아이가 자꾸 "~ 때문이야"라며 '남 탓'을 하는 것 같은데 괜찮은가요. = 아 네. 아이가 일곱 살이군요. 아이가 "누구 때문이야"라고 하면 남에게 잘못을 넘기는 것 같아 걱정이 되실 것도 같은데요. 이는 만 4~5세, 취학 전 아이들에게 나타날 수 있는 자연스런 모습입니다. 심리학자 에릭슨이 말한 발달 단계와도 딱 맞습니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자기 주도성이 커지면서 뭐든지 자기 주도적으로 하고 싶어 해요. 차를 탈 때도 꼭 앞자리에 앉고 싶어 하고, 먹을 때도 자기가 먼저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요. 한마디로 세상을 좌지우지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시기입니다. 이때의 아이들은 '거짓말'을 잘하기도 합니다. 냉장고에 있던 아이스크림을 먹어 놓고 동생이 먹었다고 하거나 본인이 실수해서 물을 쏟았는데 동생이 했다고 하기도 하지요. 사실 그건 거짓말이라기보다 일종의 '포장'입니다. 다른 사람보다 앞에 서고 싶고, 잘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올라오는 말이지요. 아이들이 "엄마 아빠 때문이야", "동생 때문이야"처럼 '남 탓'을 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자기를 굉장히 좋게 보이려 하고, 그렇게 얘기하고 싶기 때문이지요. 자기 주도성이 커지는 만 4~5세에는 "~ 때문이야"라며 남을 탓하는 모습을 보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발달 단계에 대해 알고 있다면 아이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아이의 '~ 때문이야'라는 말에 굳이 걱정할 필요는 없지만, 어떻게 반응하는 게 좋을까요. 엄마와 놀이를 하다 기분이 나빠졌는지 "엄마 때문이야"라고 하는 아이. 그런 상황에선 오히려 거꾸로 아이에게 물어보세요. "엄마가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했는데, 너에게 도움이 안됐구나?, 어떻게 도와주면 되지?"라고 말입니다. 아이가 기분이 나빠진 이유는 다양할 수 있어요. 놀이를 하다 뭔가 어긋나거나 서운한 마음이 들어도 "엄마 때문이야"라고 하고, 엄마가 나를 쳐다봐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 기분이 안 좋았다면 나중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엄마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지요. 그러니 "무엇 때문인지 엄마한테 얘기해 줄 수 있어?",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우리 가치(*아이 이름)한테 엄마가 어떻게 했더라"처럼 생각하는 모습을 보여주세요. 그래야 '~ 때문이야'라는 말을 함부로 써선 안 된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아이 스스로도 그 상황에 대해 생각할 수 있고요. 엄마가 한 톤 내리고 물어보는 것만으로 아이에겐 '배움'입니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자기 주도성이 커진다고 말했는데요. 자기가 앞장서 무언가를 하려고 할 때 부모가 혼내거나 바로 못하게 하면 그 반대로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죄책감'입니다. 아빠와 차에 타는데 앞자리에만 앉겠다는 아이의 상황을 예로 들어볼게요. 이때 아빠가 "위험해! 빨리 뒤로 가"라며 혼내기만 한다면 어떨까요. 아이는 일단 뒤로 가서 앉긴 할 거예요. 위험하다고 생각한다기보다 아빠가 더 화를 낼까 무서워 뒤로 가는 거지요. 그럴 때 아이는 자신은 나쁜 아이라며 죄책감을 느낄 수 있어요. '나는 안 되는 구나'처럼 자신을 그저 안 좋게 생각하거나 아빠가 나를 싫어한다고 여기기도 하죠. 늘 말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설명'해야 합니다.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가치야 아빠 옆에 앉고 싶어?"라는 말이지요. 그러곤 "왜 앞에 앉고 싶은 거야?"처럼 이유를 물어보세요. 아이 스스로도 본인의 마음을 알아차리게 하는 겁니다. 그럼 아이는 얘기할 거예요. "아빠 옆에 앉으면 운전하는 것 같아"라거나 "뒤에 앉으면 앞이 안 보여"처럼 말이에요. 아이의 말을 들은 아빠는 "아 그래. 그래서 앞에 앉고 싶어 하는구나"라고 말해 주세요. 그런 다음에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가치야, 네가 앞에 앉으면 아빠가 불안해서 운전을 잘할 수 없어. 갑자기 다른 차에 부딪히면 가치가 크게 다칠 수 있고. 그래서 네가 좀 더 클 때까지 뒤에 앉았으면 좋겠어." 이러면 아이도 더이상 우기진 않을 겁니다. 이 시기 아이들의 '거짓말'도 발달 단계와 연결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만 4~5세, 이때의 아이들은 거짓말도 잘한다고 말씀드렸는데요. 그렇다고 무턱대고 혼내는 건 좋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아직 감정 표현에 대해 익숙지 않고 이해도 잘 안 되다 보니 바로 '난 나쁜 아이구나'라는 마음이 들고, 더 나아가 '못된 아이니까 더 잘 못해도 돼'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죠.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 나이 아이들의 거짓말이라는 게 정말 나쁜 행동이거나 누군가를 해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러니 '하고 싶은 말이 있겠구나'라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아이가 자신이 물을 쏟아 놓고 동생이 했다고 엄마에게 말합니다. 그땐 이렇게 말해 보세요. "동생이 물을 쏟았다는 거지? 지금 엄마가 잘 들은 거지?" 이렇게만 말해도 아이는 속으로 느끼는 게 있어 쭈뼛쭈뼛할 거예요. 그렇게 말해주는 엄마에게 '다음엔 똑바로 말해야지'라는 생각이 들고 동생한테도 미안한 마음이 생기겠죠. 말이 아닌 몸으로 배우는 겁니다. 만약 아이가 컵을 엎지르지 않았다고 끝까지 우기더라도 "네가 안 했다는 거지?"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어" 정도로 넘어가야 해요. 계속 따져 물으면 아이들은 더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이는 정말 자기가 하지 않은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시야가 좁아 놀이를 하던 중이라면 컵이 엎질러진 것을 몰랐을 수도 있지요. 그러니 굳이 그 말의 잘잘못을 파고 들 필요가 없습니다. 아이의 발달 단계를 이해하며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생각하는 게 중요한 거죠. 아이들의 거짓말은 상상과도 연결돼 있습니다. 어떤 아이는 한여름인데 어린이집에 가서는 "어제 스키장에서 썰매를 탔다"고 선생님에게 말하기도 하는데요. 그럴 때 선생님이 "가치야 거짓말 하면 돼?"라고 하면 아이는 민망하고 수치심까지 느끼게 될 겁니다. 어떤 전문가는 말하더라고요. 그런 아이들이야말로 스토리텔링을 잘하는 작가로 키울 수 있는 거 아니냐고요. 그러니 영유아 때는 "아 그랬다고? 그런 일이 있었어?" 정도만 얘기하고 넘어가는 게 제일 좋은 방법입니다. 이 시기에 거짓말을 했다고 강하게 훈육하는 건 초등학교에 들어가 더 큰 거짓말을 하는 아이로 만들 수 있습니다. 실수나 잘못을 했다고 해도 스스로 말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합니다. 학교가 끝나 학원에 못 간 아이에게도 "왜 안 갔어?"라고 할 게 아니라 그 이유를 물어보며 상황을 이해해 주고, 실수가 있었다면 그럴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해 주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야 또 다른 잘못이나 실수를 했을 때도 스스로 이야기할 수 있으니까요. 부모가 아이를 믿는다는 걸 몸으로 배워야 아이도 바르게 자랄 수 있습니다. 상담=오명녀 센터장, 취재·정리=김지은 기자 한라일보의 '가치 육아'는 같이 묻고 함께 고민하며 '육아의 가치'를 더하는 코너입니다. 제주도육아종합지원센터 오명녀 센터장이 '육아 멘토'가 돼 제주도내 부모들의 고민과 마주합니다. 한 달에 한 번 영유아 양육 고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전문가 조언이 필요한 고민이 있다면 한라일보 '가치 육아' 담당자 이메일(jieun@ihalla.com)로 보내주세요.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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