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엄마의 땅: 그리샤와 숲의 주인'. [한라일보] 겨울의 막바지였던 지난 주말에는 가족 여행으로 수안보에 다녀왔다. 온천이 유명한 곳 정도로만 알고 있었던 곳인데 막상 가보니 제천과 단양, 충주의 다양한 관광명소들을 오가기 적합한 곳이기도 했다. 청풍명월을 느낄 수 있는 유람선과 케이블카는 호수 위에서, 산 꼭대기에서 신비로운 자연 경관을 누릴 수 있는 문명의 혜택이었다.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관광지에 나는 심드렁하게 굴었지만 막상 나아가는 배 위에서 마주하는 풍경과 산 밑으로 펼쳐진 장쾌한 자연의 형상에는 눈이 번쩍 뜨였다. 아무리 좋은 기종으로도 어떤 신박한 포즈로도 담을 수 없는, 그저 눈에 담고 마음에 간직할 원본 이상의 원형을 마주하면서 이 산이, 이 호수가 어떻게 여기에 태어났는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날은 인공눈물을 넣지 않았는데도 눈이 맑았다. 알 수 없는 개운함과 영원히 모를 경이의 실체 앞에서 고민 없이 자유로웠다. 박재범 감독의 [엄마의 땅: 그리샤와 숲의 주인]은 툰드라에 사는 소녀 그리샤의 이야기를 그린 극장용 장편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다. 무려 45년 만에 선보인 스톱모션 기법의 이 영화는 자연의 한복판에서 자신의 삶을 지켜나가는 소녀의 고군분투를 담고 있다. 태어난 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닥치는 외부의 위협과 그 위협을 극복하는 신비로운 모험을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의 메시지는 작품의 만듦새와 꼭 닮아있다. 전세계적으로도 드물게 제작되는 수작업 방식인 스톱 모션은 긴 시간과 그만큼의 정성이 필요한, 만든 이의 온기가 캐릭터들에게 고스란히 전이될 수 밖에 없는 작업이기도 하다. [엄마의 땅; 그리샤와 숲의 주인]은 약 3년 3개월의 제작 기간을 거쳐 70분이 채 안되는 작품으로 완성되었다. 누군가의 세심한 손길로 생명을 얻은 이 영화 속의 캐릭터들은 생명의 소중함과 자연 앞에서의 겸손함을 말한다. 남의 것을 탐하지 말고, 주어진 삶을 귀하게 여기고, 자연의 위대함 앞에 감탄과 존경을 말하는 이 영화의 메시지가 교조적이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이 메시지를 전하기 가장 적합한 방식을 택해 긴 시간을 고심했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의 땅: 그리샤와 숲의 주인]은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라는 좁은 영토 안에서 미지의 땅인 툰드라로 확장한 시야 그리고 그보다 멀리를 내다보는 인간과 자연의 유대라는 고전적인 교감으로 여전히 큰 울림을 주는 작품이다. 더 빠르게, 더 많이, 더 넓게 오르고 내리는 위태로운 숫자들의 레이스로 빼곡한 작금의 영화판 레이스 안에서도 순록에 올라타 자신의 목표를 위해 멈추지 않는 그리샤를 닮은 영화가 존재한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자신만의 속도와 방향을 알고 있고 그 길에 만나는 바람을 느낄 준비가 되어 있는 작고 위대한 움직임들이 계속되기를 바란다. 자연주의 시인인 메리 올리버의 '블랙 워터 숲에서'에는 '이 세상에서 살아가려면/세 가지를 할 수 있어야만 하지'라고 썼다. 그 세가지는 '유한한 생명을 사랑하기/자신의 삶이 그것에 달려 있음을 알고 그것을 끌어안기/그리고 놓아줄 때가 되면 놓아주기'이다. [엄마의 땅:그리샤와 숲의 주인]과 [가재가 노래하는 곳]의 주인공들은 그 거대한 자유를 알고 있는 이들일 것이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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