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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학주의 詩읽는 화요일] (8)빈 의자 (김선태)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입력 : 2023. 02.28. 00:00:00
빈 의자



김선태





복사꽃 핀 언덕에 의자가 두 개

한쪽에 내가 다른 한쪽엔 그녀가 나란히 앉아 강물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렇게만 꿈결 같은 봄날이 흐르고

그녀는 향기만 남겨놓은 채 홀연 먼 곳으로 떠나버렸습니다



향기는 아무리 문질러도 지워지지 않았으므로

향기와 내가 나란히 앉아 오래도록 강물을 바라보았습니다



강물이 흐느끼는 소리로 빠르게 흘러갔습니다

빈 의자엔 여전히 그녀의 향기가 앉아 있습니다

삽화=써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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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봄날, 손을 잡고 있을 때 그녀의 손톱까지 복사꽃 색이었을까. 마침 복사꽃은 피었다. 하나가 비면 다른 하나 또한 채워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사랑은 어쨌거나 고독하고, 내가 앉고 남은 "다른 한쪽"의 자리는 이별의 향기가 앉아야 하기 때문에 "그녀" 있는 곳은 비어 있는 곳이어야 한다.

"빈 의자"는 실제 의자라기보다 마음의 빈 곳일 텐데, 그런 사물이 마음의 빈자리에 들어앉을 때 인간의 눈망울은 강물을 따라가듯 하염없이 아득해진다. 그리고 강물에 마음속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이다. 사람들은 헤어지는 것보다 잊혀지는 것이 더 아프다고 한다. 정말 그럴까. 사람들은 헤어진 후엔 그냥 잊어버리라는 말도 하지 않는가. 그게 가능할까.

그리고 알고 있을까. 사랑에서 연유한 마음의 상처는 세상살이에서 힘들고 지칠 때 찾아들 수 있는 자신의 은신처이기도 하다는 것. 그런 역설은 우리 모두 사랑에게 빚이 있다는 걸 알려 준다.

꿈결이런가. 복사꽃도 짧은 미소처럼 지고 봄날은 가리. 여기가 어디일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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