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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훈의 한라시론] 빨갱이라는 이름의 낙인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입력 : 2023. 03.23. 00:00:00
[한라일보] 봄빛이 완연한데 나라 꼴은 엉망이다. 지난달에는 검사 아들의 학교폭력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때맞춰 상영한 드라마 '더 글로리'는 사그라지던 분노의 잔불을 깨웠다. 학폭의 속성은 학교의 담장을 넘나드는 사회현상이고, 현재적이기 때문이다. 드라마 '더 글로리'의 대사 한 토막이다.

"니들은 왜 다 그걸 묻냐? 난 이래도 아무 일 없고 넌 그래도 아무 일이 없으니까. 지금도 봐, 네가 경찰서 가서 그 지랄까지 떨었는데 넌 또 여기 와 있고 뭐가 달라졌네? 아무도 널 보호하지 않는다는 소리야 동은아, 경찰도 학교도 니 부모조차도. 그걸 다섯 글자로 하면 뭐다? 사회적 약자!"

피해 학생은 지지리도 운이 없어 검사 아비를 뒷배로 가진 학우를 만난 것이다. 왜 사춘기 제주 청년은 가해 학생으로부터 더러운 '돼지새끼'와 '빨갱이 새끼'라는 욕설을 반복해 들어야 했을까. 제주 해협을 건너 유학을 왔고 진보적인 신문을 본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50년 넘게 육지에서 살아온 제주섬 출향인의 마음에 감회가 몰려왔다.

'돗통시'는 70년대만 해도 섬나라 시골에 남아있던 독특한 풍경이었다. 분뇨를 이용해 화산섬 자갈밭을 살찌우는 거름으로 활용할 뿐 아니라 바다 오염을 원천 봉쇄했다. 당시로서는 꿩 먹고 알 먹는 최적의 친환경 생태순환 방식이었다. 이 지혜로운 조상 덕에 제주 장병들은 신병훈련소에서 무시로 '똥돼지'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빨갱이'는 다르다. 더러운 돼지새끼와 빨갱이 악마가 버무려지면 생사를 갈랐다. 이는 제주4·3 당시, 기독교 신자인 서북청년단원들이 제주 양민을 거리낌 없이 학살했던 의식구조였기 때문이다.

제주 사람을 얽매는 빨갱이란 굴레는, 일제가 좌익이념을 가진 독립운동가에게 찍었던 낙인이었다. 1948년 5·10 선거에 아버지가 우익진영 후보로 출마한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채만식의 소설 '도야지'에 이런 구절이 있다.

"1940년대의 남부조선에서 볼셰비키, 멘셰비키는 물론 아나키스트, 사회민주당, 자유주의자, 일부의 크리스찬, 일부의 불교도, 일부의 공맹교인, 일부의 천도교인, 그리고 주장 중등학교 이상의 학생들로서 사회적 환경으로나 나이로나 아직 확고한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잡힌 것이 아니요, 단지 추잡한 것과 부정사악한 것과 불의한 것을 싫어하고, 아름다운 것과 바르고 참된 것과 정의를 동경 추구하는 청소년들, 그 밖에도 XXX과 XXXX당의 정치노선을 따르지 않는 모든 양심적이요 애국적인 사람들 이런 사람을 통틀어 빨갱이라고 불렀느니라."

이승만과 한국민주당의 정치노선을 따르지 않는 사람도 빨갱이란 소리였다. 그래서 '빨갱이의 탄생'을 쓴 김득중 선생은, 빨갱이였기 '때문에' 처벌받은 것이 아니라 그들은 처벌받은 뒤에 빨갱이가 '되었다'고 말한다. 검사의 아들이나 태영호 같은 이들에게 권한다.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를 제대로 읽고 조성봉 감독의 다큐 영화 '빨갱이 사냥'을 감상하시라. 영화는 유튜브에서 무료로 볼 수 있다. <김양훈 프리랜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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