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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만 되고 싶지는 않았던 우리… '서로 돌봄' 꿈꾸죠"
[가치육아 - 공동육아] (3)경력잇는여자들
해외서 창업 등 뜨겁게 일했던 김영지씨
결혼·출산·육아 거치며 경력단절 '선택'
협동조합 만들어 문제 해결 방안 등 고민
김지은 기자 jieun@ihalla.com
입력 : 2023. 04.06. 15:43:42

경력잇는여자들 협동조합이 올해 시행하는 '엄청나(엄마 청년 나 찾기) 프로젝트'. 출산과 육아로 경력이 단절된 청년 엄마들이 나를 찾고 나만의 스토리와 콘텐츠를 개발해 제주지역 청년 활동가가 되는 프로젝트다. 사진=경력잇는여자들

"'경잇녀'(경력잇는여자들 협동조합)를 하기 전에는 친구들에게 결혼하지 말라고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결혼을 하라고 말하죠. 첫째를 임신했을 땐 제 미래가 불안하고 불투명했는데, 지금은 엄마이면서도 결혼하지 않을 때보다 잘 살 수 있는 자신이 생겼어요." 경력잇는여자들 협동조합 이사장 김영지(37) 씨가 말했다.

경력을 잇고 싶어도 그렇지 못하는 여성들이 많다. 통계청이 지난해 발표한 '2022년 상반기 지역별 고용조사 - 기혼여성의 고용 현황'을 보면 같은 해 4월 기준 제주도내 경력단절여성은 1만1000명이었다. 이를 포함한 전체 조사 대상이 일을 그만둔 가장 큰 이유는 단연 육아(42.8%)였다. 이어 결혼(26.3%), 임신·출산(22.7%), 가족 돌봄(4.6%) 등이 경력단절로 이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육아로 경력단절… 후회 없지만 불안했던 날

영지 씨 역시 어쩔 수 없이 경력단절을 '선택'해야 했던 경험이 있다. 20대 때는 누구보다 뜨겁게 일했던 그였다. 관광을 전공해 국내 대형 여행사 본사에서 근무했고, 튀르키예(터키)에서 게스트하우스와 여행사를 차리기도 했다. 러시아까지 뻗어나간 체인점은 큰 성공을 거뒀다. 그러다 남은 공부를 하기 위해 돌아온 서울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고, 대학원을 졸업하면서 결혼해 남편의 고향인 제주로 내려왔다.

2018년 태어난 아이가 8개월쯤 되던 때 기회가 찾아왔다. 제주도내 한 대학의 전임교수로 임용되면서 새로운 일을 하게 됐다. 그런데 "울면서 출근했다"고 할 만큼 힘든 시간을 보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돌보면서는 사회 안에서 '경쟁'할 수 없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맞닥뜨려야 했다.

"(제주라는) 타 지역에 와서 잡은 좋은 기회이고, 개인적으로도 큰 성과였어요. 그런데 엄마와 처음 떨어진 아이가 많이 아프고 시부모님도 아프신 상황이라 일을 그만두고 경력단절을 선택했지요. 예전 같으면 야근을 하든 뭐라도 했을 텐데 더 이상 같은 위치에서 싸울 수가 없었어요. 물론 제 선택에 후회하진 않지만 '나를 저버려야 하는 건가'라는 생각에 트라우마가 심했죠."

그러다 아이가 4살이 되던 2021년, 영지 씨는 같은 마음의 엄마들을 모았다. "엄마가 되고 싶었지만 엄마만 되고 싶진 않았던" 5~7명이 처음 모였다. 영지 씨의 전공을 살려 도내 영세 기업에 콘텐츠 제작, 마케팅 등을 지원하는 것을 시작으로 엄마들이 모여 이야기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 사이 돌봄 공백은, 또 다른 엄마들이 엄마표 영어수업을 하고, 밧줄 놀이 등으로 놀아주며 메웠다.

협동조합으로 모습을 갖춘 것도 그 해이다. 10월에 법인을 만들어 정식 출범했다. 올해로 3년차, '경력잇는여자들'이란 이름으로 제주지역 경력단절여성들이 다시 사회로 나올 수 있도록 여러 시도를 잇고 있다. 이번 해에는 만 39세 미만의 엄마 청년을 지역청년활동가로 키우는 '엄청나(엄마 청년 나 찾기) 프로젝트'와 중장년 경력단절여성의 세대 돌봄 전문성을 높이는 '다봄(다시 찾는 나의 봄, 다같이 돌봄)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행정안전부와 삼성생명, 제주특별자치도, 공무원연금공단, 제주청년센터, 제주도시재생지원센터 등이 함께 손잡았다.

경력잇는여자들 협동조합이 제주국제평화센터 제주 피스 스쿨(Jeju Peace School) 운영에 참여한 모습. 사진=경력잇는여자들

|"어디도 못 끼는 경력단절여성"… '서로 돌봄' 활성화를

영지 씨는 경력단절여성이 "다수여서 어디에도 끼지 못하는" 구조가 이들을 다시 사회로 나서기 어렵게 한다고 했다.

"제주에는 다양한 청년 정책이 있는데, '만 39세' 나이 기준에 맞아도 엄마여서 받지 못하는 혜택이 있습니다. 청년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도 아침 일찍이나 저녁 늦게 진행되는 경우가 많고, 아이를 데리고선 갈 수가 없지요. 경력단절 프로그램도 마찬가지입니다. 엄마들의 이전 경력과는 무관한 카페청 만들기, 손뜨개질 하기, 청소하기 등으로 하향 평준화되고 일률화돼 있어요. 경력단절이 됐으니 밑으로 가야 한다는 결론 밖에 나지 않는 거죠."

영지 씨는 경력단절 문제를 풀기 위한 해법의 하나로 '창직'을 얘기했다. 이는 '경잇녀'의 방향성이기도 하다. 엄마들이 아이를 키웠던 경험에 더해 이전의 경력과 재능 등을 종합해 전에 없던 직업으로 사회에 나설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창업은 같은 업종에서 경쟁해야 하고, 취업은 더 어려운 게 현실이에요. 그런 만큼 경잇녀가 할 수 있는 것도 '창직'이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밥상머리교육', 이런 건 기존에 없던 직업이잖아요. 와인바를 운영했었다면 와인에 문화적인 요소를 결합해 새로운 직업을 만들 수 있고요. 제가 저희 직업을 설명할 수 없는 걸 보면 경잇녀 자체도 '창직'인 것 같아요.(웃음) 그런데 이걸 통해 많은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있으니 가치가 있지요."

영지 씨와 경잇녀에게 '돌봄'은 아이를 보살피는 육아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맨 먼저 자기 스스로를 돌보는 것에서 시작해 사회를 향해 발을 뻗는다. 올해 '엄청나 프로젝트'로 세대를 돌보고 지역을 돌보는 엄마 청년활동가를 키우는 것도 같은 이유다. 결국엔 사회 안에서 모두에 의한 돌봄, 모두를 위한 돌봄이 활성화돼야 경력단절 문제도 해결될 수 있을 거라는 얘기 같았다.

"사실 저희가 클 때는 마을이 아이를 키웠잖아요. 그런 것처럼 누가 누구를 돌봐야 하는 것이 아닌, 서로간의 돌봄을 지향해요. 경잇녀가 했던 세대돌봄 프로젝트인 '코삿한 제주사랑방'도 그런 취지이고요. 마을 부녀회가 아이들을 위한 음식 교실을 열어주면, 또 누군가는 그분들이 본인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스피치 테라피를 열기도 하고요. 그런 것처럼 서로 다같이 돌봤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여성들의 경력이 끊길 일도 없지 않을까요."

한라일보 '가치 육아 - 공동 육아'. 한라일보 DB

◇가치 육아

한라일보의 '가치 육아'는 같이 묻고 함께 고민하며 육아의 가치를 더하는 코너입니다. 부모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담는 '공동육아'와 제주도육아종합지원센터 오명녀 센터장이 육아 멘토로 나서는 '이럴 땐'을 2주에 한 번씩 연재합니다. 모두와 함께 공유하고 싶은 육아 이야기나 전문가 조언이 필요한 고민이 있다면 한라일보 가치 육아 담당자 이메일(jieun@ihalla.com)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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