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째 봄 - 이병률 나무 아래 칼을 묻어서 동백나무는 저리도 불꽃을 동강동강 쳐내는구나 겨울 내내 눈을 삼켜서 벚나무는 저리도 종이눈을 뿌리는구나 봄에는 전기가 흘러서 고개만 들어도 화들화들 정신이 없구나 내 무릎 속에는 의자가 들어 있어 오지도 않는 사람을 기다리느라 앉지를 않는구나 삽화=써머 시는 마지막 연을 향해 가고 있지요. 동백 지고 벚꽃 흩날리는 사연을 안다 한들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그게 전부일 수 없죠. 나는 여기저기 출신이어서 잘 압니다. 어디서나 기다림 속에는 삶이 들어가 산다는 것. 앓아내야 한다는 것. 약하면서도 꺼지지 않는다는 것. 화들화들 정신없는 일이 봄의 소관이라 해도 나비 날개 같은 이 시간 이후엔 무엇이 올까요. 가고 가면서 오지 않을 사람을 지향합니까. 겨울을 다녀온 동백꽃과 벚꽃들이 이 봄을 집착하지 않듯이 우리가 잦은 이별을 수긍한다면 사랑은 비상할까요. 오지도 않는 사람이어서 가슴을 비워두고, 그래서 내게 보물이 된 사람은 지금 낙화 속에 있을 수 있고요. 내 무릎 위엔 없습니다. 손 안경을 하고 건너편을 바라봅니다. 세상엔 당신이 있는 삶과 없는 삶 두 개가 있습니다. 몇 번째 봄인가요? <시인>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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