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같은 외과 의사라 할지라도 성형 수술을 하는 의사, 대장암 수술을 하는 의사, 혹은 심장 수술을 하는 의사가 따로 있는 것처럼 정신과에도 세부 전공이 있어서 소아나 청소년을 보는 정신과 의사, 성인을 보는 의사가 있고, 필자와 같이 노년층을 주로 보는 의사도 있다. 약으로 하는 치료를 주로 하는 의사가 있는가 하면 정신 치료라 불리는 상담을 주로 하는 의사, 아니면 전기나 자기를 이용해 뇌에 자극을 주는 치료를 주로 하는 의사들도 있다. 필자는 대학 병원의 신경과학센터에 근무하다 보니, 이미 다른 의사를 봤지만 좀 더 복잡한 진단이나 치료가 필요해 진료 의뢰를 받아 온 환자를 주로 본다. 이런 경우는 정확한 진단을 내리고 치료 방향을 제시하는 게 주 업무라 진단 검사를 내고 초기 집중 치료 결과를 확인하고 나면 원래 보던 의사한테로 돌려보내는 경우도 많다. 진료를 기다리는 환자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기적으로 장시간 만나는 환자는 상대적으로 적다. 정신과 의사가 장래 희망이던 어린 시절에 정신과 의사라면 책이 가득 꽂힌 고풍스런 책장이 있는 방에 앉아서 편안한 의자에 앉은 환자와 끝없는 대화를 나누며 정신세계를 탐험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 커다란 컴퓨터 앞에 앉아 뇌 영상을 들여다보며 신경과학 연구를 하고 있는 내 모습은 어릴 적 막연히 생각했던 정신과 의사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그런데 때때로 나의 본분(?)을 일깨워 주는 환자들을 만날 때가 있다. 아주 젊은 나이에 겪은 두 번의 큰 뇌출혈로 인한 뇌 손상으로 변호사의 꿈도 접고 오래도록 우울증에 시달린 환자였다. 어떤 약을 써도 좋아지지 않는 우울증이 혹시 특정한 부위의 뇌 손상 때문인지, 혹시 새로운 자기 자극 치료나 정맥 주사가 효과가 있을지에 관한, 다분히 신경과학적인 의뢰였다. 한 시간 반 동안의 진료 동안, 여느 때처럼 당신의 뇌 MRI가 이렇고, 최신 연구 결과는 저렇다며 이런저런 설명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가만히 내 말을 듣던 환자가 아주 궁금한 표정으로 묻는 것이다. 나는 처방해 주는 약도 먹고 시키는 대로 다 할 건데, 정말 그렇게 하면 좋아질 수 있냐고. 그 질문을 받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세상에 많은 종류의 정신 치료가 있는 와중에 치료의 성공을 예측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강한 인자는 “치료 동맹”이라는 것이다. 직역한 용어라 선뜻 의미가 와닿지 않을 수도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치료자와 환자가 서로를 믿고, 좋아지는 방향으로 협력하는 게 정신 치료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치료 동맹을 환자한테 설명하며 나 스스로도 실로 오랜만에 그 의미를 곱씹었다. 환자가 나를 믿고, 나는 환자가 좋아질 것을 믿고 최선을 다하는 것. 그 어떤 최신, 첨단의 이름을 단 치료법보다 더 중요한 것 말이다. 과학, 그 이상의 많은 의미가 있기에 나는 정신과를 택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환자는 나를 통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나는 환자를 통해 그만큼 더 배우는 것. 이것이 바로 정신과, 정신 치료의 즐거움이다.<이소영 미국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 브리검여성병원 정신과 교수>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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