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자꽃 향기 - 박홍점 작년 여름에는 아기 주먹만한 꽃 툭툭 불거져 집안을 채우던 향기 연초에 투가리 같은 아내를 먼저 보내고 하루하루를 치자나무에 걸어두는 노인 살뜰한 남편은 아니었지만 집요한 눈길 뿌리치지 못했는지 천길 달려와 해거리 하려다 그만두고 딱 한 송이 한평생 무능력을 원망하며 돌아앉아 저 왠수 죽지도 않는다고 푸념하더니 마주 보고 앉아 무슨 얘기 나누는 걸까 꽃도 노인도 오금 저리는 오후 삽화=써머 아내가 투가리도 되고 치자꽃도 되는 것은 내 '생각' 때문이지만 "하루하루를 치자나무에 걸어두는" 것은, 또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아내의 죽음 때문이다. 그리고 그 죽음이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죽음이라는 고정된 현실이 꿈의 여인처럼 치자꽃으로 변신하는 그 생각 속에서 남편은 못다 한 얘기를 마저 나눌 수 있다. 이 시에서 꽃과 노인이 오금을 저리는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 둘을 연결시켜 주며 짝을 이루고 있는 것은 잔허(殘墟)처럼 남은 희미한 사랑이다. 그런 자각과 방불한 것으로도 읽힌다. 내 사랑이 내 사랑을 피운다. 내 사랑만 확인된다면 '너'는 가장 아름다운 하얀 치자꽃이 되리. <시인>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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