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일(某日) - 박목월 시인이라는 말은 내 성명 위에 늘 붙는 관사(冠詞). 이 낡은 모자를 쓰고 나는 비 오는 거리로 헤매었다. 이것은 전신을 가리기에는 너무나 어줍잖은 것 또한 나만 쳐다보는 어린 것들을 덮기에도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것. 허나, 인간이 평생 마른 옷만 입을까부냐. 다만 두발(頭髮)이 젖지 않는 그것만으로 나는 고맙고 눈물겹다. 삽화=써머 비 오는 거리를 헤매는 시인의 빗방울 같은 사념들은 시인으로서 겪어야 하는 어줍잖음과 어처구니없음을 당연한 사실로 요청하는 한편, 떠맡은 희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비 오는 세상에서 시인이라는 낡은 모자 하나로 자신을 위해서는 무얼 할 수 있으며 가족을 위해서는 어떻게 쓰일 수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지만, 그래서 자신의 성명 위에 기꺼이 그 '관사'를 올려둔다. 시는 자신의 확고한 중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머리만 비에 적시지 않고 가도 기적이라는 듯이 마지막엔 고맙고 눈물겨운, 고양된 상태에서 말을 멈춘다. 순수하고 소박한 논리이지만 그것은 빗물 같은 눈물이 채우고 있으며, 낙관적인 태도이지만 그것은 아픈 영혼의 신음소리와 같다는 것을 잊지는 말자. 시인이 현실의 테두리 밖에서 규범을 뛰어넘으며 모험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은 객관적 조건이라기보다는 희망에 속한다. 초점은 그것이다. 시인은 그러지 못하는 자신의 고통을 끝내지 못해 비 오는 거리를 마냥 헤매고 있는 인간이라는 것. <시인>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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