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옥규 환경교육지도사가 시흥초 학생들에게 4·3광풍에 휘말린 선흘리 주민들이 피신했던 '도틀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라일보] "어! 여긴 밤처럼 어두워." 우산처럼 햇살을 가린 나무 사이로 아이들이 줄지어 걷기 시작했다. 고요했던 숲도 잠에서 깨어나 아이들을 반겼다. '2023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과 한라일보가 함께하는 숲길체험 프로그램'의 올해 세 번째 탐방이 지난 22일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 동백동산 습지에서 진행됐다. 이번 숲길 탐방에는 서귀포시 성산읍 시흥초등학교 3~6학년 재학생과 교사가 동행했다. 동백동산 습지는 크고 작은 용암 덩어리와 나무, 덩굴식물이 뒤섞인 숲인 곶자왈 지대이자, 난대상록활엽수 천연림으로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특히 동백동산 습지는 사시사철 마르지 않아 다양한 수생식물과 곤충과 양서류가 서식한다. 환경부 지정 멸종 위기종인 순채(蓴菜)와 세계에서 유일하게 제주에서 볼 수 있는 '제주고사리삼'이 동백동산 습지에서 자란다. 탐방을 시작한 지 5분쯤 지났을까. 숲 해설을 맡은 유옥규 환경교육지도사가 발걸음을 멈췄다. 숲 한가운데 철골 구조물로 입구를 막은 작은 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70여년 전 4·3광풍에 휘말린 선흘리 주민들이 피신했던 '도틀굴'이다. 도틀굴에 숨어든 25명 중 18명이 토벌대에 의해 희생됐다.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풍광을 간직한 동백동산은 가슴 시린 4·3의 역사를 함께 품고 있다. 동백동산습지 숲길 체험..4·3유적 가장 기억에 남아 유 지도사가 아이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할머니, 할어버지 세대 때 이념이 대립했어. 하나는 공산주의고 하나 뭔지 알아?" "민주주의요." 한 학생이 잽싸게 답했다. "그래 그 이념이 뭔지, 4·3때 제주도에서 2만5000명이 희생됐어. 당시 제주도 인구 28만명이니까 약 10분의1이 돌아가신거야. 이 곳이 이런 아픈 역사가 숨어 있는 곳이라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어" 숲은 살아 있는 교육현장이다. 유 지도사가 굵은 뿌리를 지상에 드러낸 나무를 가리키자 아이들이 일제히 몰려들었다. 유 지도사가 말했다. "원래 나무는 땅속 깊이 뿌리를 내려야 하는데 이 곳은 돌무더기가 많다보니 나무가 돌덩이를 잡고서라도 쓰러지지 않으려고 뿌리를 땅 위로 뻗어 돌을 움켜쥐고 있는 거야. 그러니 너희들도 이 나무처럼 튼튼해지려면 열심히 운동해야 해" 돌무더기를 비집고 땅속에 뿌리를 내린 나무들도 많다. "이런 나무들은 땅속에서 서로의 뿌리를 칭칭 옭아매 단단하게 지탱하고 있는 거란다. 너희들이 사는 세상도 마찬가지야. 옆에 있는 친구들이 살아가는데 의지가 되고 힘이 되어줄거야." 유 지도사의 말을 들은 한 아이가 옆의 친구를 보고 "야 우리 친하게 지내자"고 한마디를 건넸다. 이밖에 이날 숲길 탐방은 동백동산 이름의 유래와 동백동산이 형성된 기원을 가르치고 숯 가마터와 노루를 잡는 덫이었던 노루텅 등 숲에서의 생활상 등을 엿보는 시간들로 채워졌다. "도틀굴이 가장 인상에 남았다"는 서리아(13·6학년)양은 며 "학교에서 애니메이션 등으로 4·3 역사를 배우고 있는데 4·3유적을 눈으로 직접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4·3역사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학생들과 함께 탐방에 참여한 고택현 시흥초등학교 교감은 "진짜 살아 있는 교육이었다"며 "이런 체험은 시간이 지나도 가슴 속 깊이 남기 때문에 교육 효과가 크다고 생각한다. 매우 뜻 깊은 시간이었다"고 전했다.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이 기사는 한라일보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ihalla.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문의 메일 : webmaster@ihall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