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한라산에 자생하는 왕벚나무의 다양한 모습들. 꽃의 색깔과 꽃잎의 폭·길이, 한곳에 달리는 꽃의 수가 모두 차이를 보인다. 송관필 박사 제공 한라산 지리적 특성이 자생 왕벚나무 탄생 배경 ‘벚꽃 논쟁’ 속 학자들 노력에 자생지 지위 굳건 “재배 왕벚도 제주 자생 변이 폭에 있을 수도” [한라일보] '235그루'. 지금까지 제주 한라산에서 발견된 왕벚나무 개체 수입니다. 전 세계에서 유일한 '왕벚나무 자생지'임을 증명하는 숫자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왕벚나무 자생지는 전남 해남군에도 있지만 3만 여㎡가 넘는 면적에 왕벚나무 한 그루가 보호되고 있습니다. 이 외에 추가 자생 여부는 아직 연구된 바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유독 제주일까요. 학자들은 자연 속에서 왕벚나무를 탄생하게 한, '한라산'을 주목합니다. 김정섭 제주대학교 생명공학부(분자생명공학전공) 교수는 한라산의 지리적 특성이 오늘날 자생 왕벚나무를 있게 했다고 설명합니다. "왕벚나무가 탄생하려면 올벚나무와 산벚나무가 한곳에 자라고 같은 시기에 꽃을 피워야 합니다. 그리고 둘 사이에 꽃가루가 날아가 수분이 돼야 합니다. 이런 조건이 지리학적으로 딱 맞아떨어지는 곳이 한라산입니다. 보통 올벚이 먼저 피고 산벚이 늦게 피는데, 해발 고도가 점점 올라가면서 기온이 낮아져 두 나무의 꽃 피는 시기가 같아졌고 왕벚나무가 만들어진 겁니다. 이런 곳이 지구상에는 제주 밖에 없으니, 전 세계 유일한 자생지가 된 것입니다. '벚꽃 싸움'(왕벚나무 원산지 논쟁)을 벌이는 일본, 중국에도 왕벚나무 자생지는 없습니다." 제주 관음사 일대 왕벚나무 자생지. 한라일보 DB 제주 한라산에서 왕벚나무가 처음 발견된 것은 1908년입니다. 프랑스 신부 타케가 한라산에서 표본번호 4638호로 왕벚나무를 채집한 해입니다. 이 표본이 베를린대학 쾨네 박사에게 보내지면서 한라산 왕벚나무가 학계에 알려지게 됐습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변종'쯤으로 여겨졌습니다. 앞서 '왕벚나무'는 1901년 일본 학자 마쓰무라에 의해 새로운 종(학명 프루누스 예도엔시스, Prunus yedoensis)으로 보고된 바 있었기 때문입니다. 1912년 쾨네 박사가 제주에서 채집된 왕벚나무에 붙인 학명이 프루누스 예도엔시스 버라이어티 누디플로라(Prunusyedoensis var.nudiflora)인데, 여기에서 버라이어티가 '변종'을 뜻합니다. 왕벚나무 자생지로서의 제주에 대한 평가도 엇갈렸습니다. '왕벚나무는 한국 자생종이며, 원산지는 제주도임을 인정'한 (모리 다메조, 1922 조선식물명휘) 학자도 있었지만, '왕벚나무는 한라산에 자라고 있지만 이를 원산지로 보기는 불분명하다'(이시도야, 1928 일본식물총람)는 견해도 있었습니다. 1933년 제주를 직접 찾았던 일본 학자 다케나카는 왕벚나무 원산지가 제주도임을 인정했다가 자생지 요건을 불충족한다며 의견을 번복하기도 했습니다. '자생지라면 천연식생 중에 생육하는 개체 수가 많으며 변이의 폭이 크고 노목에서 치수(나서 한두 해쯤 자란 나무)까지 있어야 하는데 제주도 자생지는 한라산 남측 해발 600m에서 발견된 1개체뿐이며, 그 개체는 그다지 큰 나무가 아니다'라는 이유에서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릅니다. 제주 한라산에 분포하는 왕벚나무에 대한 조사가 이어지면서 제주가 왕벚나무 자생지라는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게 됐습니다. 1962년 박만규, 부종휴가 제주 자생 왕벚나무 세 그루를 추가로 발견한 것을 시작으로 국내 학자들의 노력이 더해진 결과입니다. 우선 개체 수입니다. 현재까지 한라산 해발 270m부터 해발 900m 사이에서 발견된 자생 왕벚나무가 235그루에 달합니다. 어린 나무부터 노목까지 넓게 분포하고 있는데다 형태적 다양성도 큰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에서 한라산 왕벚나무 자생지를 조사했던 송관필(제주생물자원 대표) 박사는 "제주 자생 왕벚나무는 그 다양성이 어마어마하다"며 "개체마다 다 다르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2017년 조사한 자생 왕벚나무만 봐도 근원경(밑동의 직경)이 20㎝에서 100㎝까지 된다"며 "작은 개체부터 큰 개체까지 자연 상에 자라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송 박사는 "제주 자생 왕벚의 경우 꽃잎의 길이와 폭, 암술과 수술의 길이를 쟀을 때도 상당히 다양하게 나온다"면서 "올벚처럼 꽃이 작은 경우, 잔털벚나무처럼 꽃이 큰 경우처럼 육안으로 봐도 서로 다른 꽃형질이 존재한다"고도 했습니다. 제주 전농로 왕벚꽃 축제의 한 장면. 제주시 삼도동 전농로는 왕벚나무가 심어진 길로 유명하다. 한라일보 DB 제주 자생 왕벚나무의 '다양성'에 주목하는 학자들은 '재배 왕벚' 역시 자생 왕벚의 '변이 폭'에 포함돼 있다고 보는 게 적절하다고 주장합니다. 일반적으로 자생 왕벚과 재배 왕벚을 서로 구분 짓고 있지만, 이를 서로 다른 종처럼 둘로 나눌 수 없다는 겁니다. (주)숲과나무 대표인 문명옥 박사는 "사람만 봐도 키, 몸무게, 팔 길이 등의 생김새와 형태가 모두 다른데, 키가 평균보다 훨씬 크다고 해서 사람이 아니라고 하진 않는다"며 말을 이었습니다. 문 박사는 "가로수로 심어져 있는 (재배) 왕벚은 왕벚나무 축에서도 꽃이 크고 자루도 긴 왕벚"이라며 "이 둘이 단절되는 것처럼 아주 명확하게 구분되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이는 재배 왕벚과 자생 왕벚의 '유전적 다름'도 더 조사해야 한다는 목소리로 연결됩니다. 국립수목원은 2018년 유전체 분석을 통해 '제주 왕벚나무와 일본 왕벚나무(연구진이 재배 왕벚에 붙인 이름)는 서로 다른 식물'이라는 결과를 내놨는데, 당시 포함된 제주 자생 왕벚나무 개체가 현재까지 발견된 235그루의 단 2%(5그루)였습니다. 분석 대상이 극히 한정된 결과로 전체를 일반화할 수 없고, 유전적 다름이 그 기원을 정할 근거가 되지 못한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문 박사는 "현재 발견된 왕벚나무는 300여 그루이지만, 지금도 계속 새로 보이는 추세로 보면 그 수가 500그루에서 1000그루까지 될 것으로 예상한다"면서 "이 중에 관음사 왕벚(국립수목원 연구진이 '일본 왕벚'과 유전적으로 같다고 밝힌 나무)과 DNA 상으로 일치하는 개체가 안 나올 거라는 것을 단정하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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