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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버스승차대 25% 규격 미달… 경찰 납품 비리 수사
경찰청, 승차대 기둥 가공·납품 업체 대표 사기 혐의 입건
국과수 분석 결과 130여개 중 30여개 규격 미달 자재 사용
부실 시공에도 준공검사 무사 통과… 경찰, 제도 개선 건의
이상민 기자 hasm@ihalla.com
입력 : 2023. 06.19. 18:00:25

사진은 기사의 특정사실과 관련이 없습니다. 한라일보 자료사진.

[한라일보] 제주도와 제주시가 3년 전 도내 전역에 설치한 버스 승차대 4개 중 1개 꼴로 규격에 미달한 자재가 사용됐지만 행정당국의 준공 검사를 그대로 통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이 과정에서 납품 비리가 있었다고 보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19일 본보 취재를 종합하면 제주특별자치도경찰청은 도내 모 건설자재 납품업체 대표 50대 A씨를 사기 혐의로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 A씨는 2020년 제주도와 제주시가 각각 발주한 '교통약자 버스 승차대 시설개선사업'과 '비가림 버스 승차대 정비 사업' 등에 참여한 원도급업체들과 계약을 맺고 승차대 기둥을 제작해 납품한 하도급업자다. 경찰은 A씨가 승차대 기둥을 납품하는 과정에서 규격에 어긋난 저렴한 것을 공급해 부당 수익을 올린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의 사업은 교통약자를 위해 점자 블록 등이 시설된 버스 승차대를 신설·교체하거나 기존 승차대를 정비할 목적으로 시행됐다. 본보가 조달청을 통해 확인한 결과 제주도는 그해 5차례, 제주시는 4차례씩 입찰 공고를 내 버스 승차대 130여개를 신설하거나 정비했다. 당시 공사 1건당 발주 금액이 적게는 1억여원에서 많게는 2억7000여만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 사업에 투입된 총 예산은 10억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경찰에 따르면 두 기관은 승차대 기둥을 시공할 때 KS규격의 '304스테인레스' 자재를 쓸 것을 계약 조건으로 내걸었다. 당시 공고된 설계설명서에는 승차대 기둥을 'KS스테인레스304' 재질로 제작하라고 명시되지 않았지만 두 기관은 낙찰업체와 본 계약을 맺을 때에는 이런 조건을 내건 것으로 확인됐다고 경찰은 밝혔다.

그러나 그해 설치된 일부 승차대에는 이보다 강도와 부식 내구도가 떨어지는 'KS스테인레스201' 재질의 기둥이 시공됐다. 201은 304에 비해 단가가 25%가량 저렴하다고 경찰은 전했다.

지난해 첩보를 입수한 경찰이 버스 승차대에서 시료를 채취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성분 분석을 의뢰한 결과 2020년 시공된 승차대 130여개 가운데 30여개에서 이렇게 규격에 미달한 기둥 자재가 쓰인 것으로 조사됐다. 그해 전체 사업 물량의 약 4분의1이 부실 시공된 셈이다.

경찰은 원도급업체들이 A씨에게 기둥 제작을 맡기는 등 하도급을 준 것이 하도급법에 위반되는지, 또 이들 간에 모종의 거래가 있었는지도 조사했지만 혐의가 없어 A씨만 입건했다고 설명했다.

경찰 관계자는 "만약 원도급업체가 공사만 따내고 전체 시공을 하도급업체에 맡겼다면 이는 불법이지만, 이번 사건에서는 일부만 맡긴 것이어서 하도급법을 위반했다고 볼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A씨는 자신도 타 업체로부터 납품 받은 자재로 기둥을 가공해 공급했다며 고의성이 없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경찰은 A씨가 납품한 기둥 중에는 규격에 부합한 것도 있어 부당 수익 규모는 수백만원 정도로 추산됐다고 덧붙였다.

경찰 수사와 별개로 제주도 차원의 진상조사는 불가피해 보인다. 버스 승차대 상당수가 부실 시공됐지만 준공검사를 그대로 통과했기 때문이다. 준공검사는 공사 설계서와 계약 조건대로 공사가 이행됐는지를 검증하는 절차를 말한다.

도 관계자는 '당시 준공검사는 어떤 방식으로 이뤄졌으며 어떻게 통과했는지' '이미 설치된 부실 시공 승차대에 대해선 다시 공사할 것인지' '준공검사를 맡았던 공무원을 상대로 조사에 나설 계획에 있는 지' 등을 묻는 질문에 "수사 결과가 나오면 대응 계획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한편 경찰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앞으로 버스 승차대 준공 검사를 할 때 전문 지식을 갖춘 인력과 재질 등을 분석할 수 있는 장비를 동원하는 쪽으로 제도 개선에 나설 것을 제주도에 건의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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