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저자가 베네치아의 푼타 델라 도가냐 미술관에서 하룻밤을 지내보지 않겠느냐는 편집자의 제안을 받아들인 건 "갇힌다"는 것이 주는 뿌리칠 수 없는 유혹 때문이었다. "나도 나갈 수 없고 다른 사람도 들어올 수 없는 장소에 혼자만 있는 것. 의심의 여지 없이 이것은 소설가의 환상"(본문 중)인 것이다. 뮤진트리에서 펴낸 '미술관에서의 하룻밤' 시리즈의 다섯 번째 책인 '한밤중의 꽃향기'는 2016년 발표한 두 번째 소설 '달콤한 노래'로 프랑스 최고 권위의 공쿠르상을 받은 레일라 슬리마니가 낯선 미술관에서 하루를 보내며 떠오른 상념들을 기록한 에세이다. '미술관에서의 하룻밤' 시리즈는 프랑스 스톡 출판사의 기획작으로, 작가가 아무도 없는 미술관에서 하룻밤을 머물며 떠오르는 사유를 글로 풀어내는 프로젝트다. 현대미술에 대해 문외한인 그녀는 미술관에서 무엇을 느껴야 할지 조금 혼란스럽다. 하지만 그 밤의 특별한 상황은 예기치 않게 아버지를 떠올리게 했다. 그렇게 아버지에 관한 못다한 이야기와 자기 자신, 감금에 대한 환상, 정체성 등 현실에서는 말할 수 없는 비밀들을 꺼내놓는다. 특히 작가로서의 삶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한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나자 나는 열심히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이해받지 못하는 사람들에 관해 썼으며, 그들의 영혼 속으로 최대한 깊이 헤엄쳐 내려갔다. 나는 내 내면의 목소리와 음악, 내 머릿속을 통과하는 단어들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내 안에서 사는 법을 배웠다. 나는 현실을 부정하기 위해서, 그리고 모욕당한 사람들을 구해내고 싶어서 글을 썼다"(본문 중)며 오래전 소설가가 되기로 한 이유도 고백한다. 출판사는 "작가로서의 삶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깊고 투명한 사유가 빛나는 작품"이라고 책을 소개한다. 그리고 "짧지만 꽉 찬 이 책에서 슬리마니는 오랫동안 다져온 문학에 대한 깊은 성찰을 펼쳐낸다. 그녀의 예술적 감수성은 매번 문학적으로 확장되고, 그녀의 감각은 그녀를 삶의 본령인 글쓰기로 되돌려 놓는다"며 "슬리마니에게 글쓰기는 거의 금욕적인 탐구이자, 삶과 세상에서 스며 나오는 아로마의 본질을 파악하려는 느린 디캔팅 같다"고 평했다. 이재형 옮김. 1만4000원.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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