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랑쉬오름의 왼쪽으로 보이는 아끈다랑쉬오름. 김찬수 아끈다랑쉬, ‘앉은 다랑쉬’인가 ‘작은 다랑쉬'인가 [한라일보] 다랑쉬오름의 정확한 뜻을 해명하기 위해 우선 주변의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다랑쉬오름의 이름이 다양한 것은 그 뜻이 아니라 소리를 적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제는 이렇게 글로 남긴 사람들조차도 그 의미를 모르고 썼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아끈'의 뜻은 무엇일까? 1899년 간행한 '제주군읍지'에는 좌랑수(坐浪秀)라고 표기했다. 여기에 쓰인 좌(坐)가 앉을 좌라는 글자기 때문에 '아진닥랑쉬' 혹은 '아진다랑쉬'라는 취지로 이렇게 썼을 것으로 보는 관점이 있다. 이런 해석은 여기에 쓰인 좌(坐)라는 한자를 훈으로 읽고 그 본뜻도 살려서 차용한 차자 즉 훈독자(訓讀字)로 봤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글자를 훈으로 읽되 그 뜻은 버리고 표음자로만 차용한 차자로 본다면 그냥 '아진'이라는 독음만 남게 된다. 앉았는지 섰는지는 중요한 게 아니라 당시 사람들은 '아진'이라고 발음한다는 뜻이 된다. 이런 방식을 훈가자(訓假字)라 한다. 그런데 어느 기록에는 소월랑봉(小月郞峯), 소월랑수(小月郞峀)로 표기한 예가 있다. 이 지명으로 볼 때는 '작은 다랑쉬'란 뜻으로 쓴 것으로 읽힌다. 이렇게 읽는 이에 따라 현재의 아끈다랑쉬는 '낮아서 앉은 것 같은 다랑쉬'라거나 인접한 다랑쉬오름에 대비하여 '작은 다랑쉬'라고 푸는 것이다. 과연 아끈다랑쉬는 '앉은 다랑쉬'인가, '작은 다랑쉬'인가. 이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여러 오름 이름을 푸는 중요한 변곡점이 된다. 제주어 '아끈'이란 중세어에도 나오듯이 '아찬'과 어원을 공유하는 말이다. 1518년에 나온 '이륜행실도'라는 책에는 '아츤선날'이 나온다. '작은 설날'이라는 뜻으로 쓴 것이다. 1542년에 나온 '분문온역역해방'(分門瘟疫易解方)에 '아찬섯날', 1653년에 편찬한 '벽온신방'이라는 책에 '아츤설날', 1690년에 나온 '역어유해'에 '아찬설'이 나온다. 모두 작은 설날로 사용하여 '작은'의 뜻으로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아끈다랑쉬, 수많은 오름에 들어있는 '앛'계 이름 또 다른 사례로 '소학언해', '노걸대언해', '역어유해'에 '아찬ㅅ달', '선사내훈본', '초간두시언해', '신증유합', '소학언해', '중간두시언해', '역어유해', '중간이륜행실도' 등 여러 고전에 나오는 '아찬아달'은 각각 조카딸과 조카로 쓰여 '조카'라는 의미를 가진다. 그런데 다른 용례도 있다. '석보상절'에는 아자마님, '태평광기언해'에 아자믜는 '아주머님', '아주머니의' 그리고 아주머니라는 뜻으로 아자미, 아주미(용비어천가 등)로 썼다. '아주머니의'의 뜻으로 아자마ㅣ(선사내훈본), 아주버님의 뜻으로 아자반이(아언각비), 숙부모의 뜻으로 아자버이(경민편언해), 작은어머니의 뜻으로 아자븨쳐(동문유해), 아저씨의 뜻으로 아자비(동문유해 등), 조카라는 뜻으로 아잔아달(번역소학) 등이 있다. 위의 '앛-'과 비슷하지만 여기서는 '앚-'이 쓰인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아우의 고어형 '앗'도 있다. 이 '앗'도 '작은'의 뜻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이같이 '작은'의 뜻으로 '앛-', '앚-', '앗-'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앛'계열의 말은 사실 알타이어권에서 널리 사용하는 말이다. '아주'를 기본형으로 하는 말로서 '어리거나 작은'을 뜻한다. 퉁구스어권에선 '아치', 몽골어계에선 '아진'으로 전개된다. 악근천은 아끈내, '앉은 내'가 아니라 '작은 내'의 뜻 아끈다랑쉬의 '아끈'이 '앉은'의 뜻이 아니라 '작은'의 뜻을 갖는다는 점은 악근천이라는 지명에서도 알 수 있다. 이 하천은 한라산 남쪽에서 발원하여 강정동과 법환동 일대를 지나 강정천 동쪽 해안으로 유입한다. 바로 서쪽 편으로 인접한 도순천과 나란히 흐르는데, 악근천에 비해 규모가 훨씬 크다. 이 도순천은 하류의 강정동 일대에서는 강정천이라 부른다. 악근천은 바로 이 도순천에 비해 '작은' 하천이라는 뜻에서 붙은 이름으로 한자 岳近川(악근천)으로 기록했다. '앉은' 내가 아니다. 이 한자 지명은 '아끈내' 혹은 '아끄내'를 기록하기 위해 동원된 것으로 그 의미는 없다. 이렇게 한자를 음으로 읽되 그 본뜻을 버리고 표음자로만 차용한 차자를 음가자(音假字)라 한다. 그러므로 일부에서 작지만, 큰 내에 버금간다하여 '버금가는' 또는 '다음'을 뜻하는 '아끈'을 붙여 '아끈내'라 불렸다는 해설은 잘못이다. 그냥 '작은'의 의미다. 제주도의 수많은 오름에 이 '앛'계 지명소가 들어있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전문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이 기사는 한라일보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ihalla.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문의 메일 : webmaster@ihall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