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장애로 미국의 역사를 다시 쓴 미국 역사학자 킴 닐슨에 따르면 유럽인이 이주하기 전 북아메리카 토착민에게는 장애라는 개념이 없었다. 예를 들어 맹인일지라도 공동체 안에서 어떤 역할이든 잘 수행하고 있다면 살아가는 데 있어서 장애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농인의 경우 더욱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대부분 사람이 수어를 사용할 수 있어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었다. 따라서 맹인은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아닌 시각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며, 농인도 듣지 못하는 사람이 아닌 청각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다. 다시 말해 북아메리카 토착민은 시각과 청각 사용을 사용할 수 있느냐 없느냐라는 능력의 측면이 아닌 사용하느냐 하지 않느냐라는 상태의 측면으로 여겼다. 이렇게 생각할 경우 맹인과 농인은 장애인이 아니다. 청각과 시각에 장애가 있다기보다 손이 큰 사람도 있고 작은 사람도 있듯 서로 다른 신체 특징을 가졌을 뿐이다. 북아메리카 토착민의 견해를 따라 생각한다면, 오늘날 비장애인이 맹인과 농인을 장애인으로 만든 셈이다. 비장애인이 시각 중심의 문화와 사회를 만들어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없는 장애가 되도록 했고, 수어를 배우지 않아 들리지 않는 것을 들을 수 없는 장애가 되도록 했다. 그리고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 보이지 않는 장벽을 만들었다. 예술계에도 이러한 장벽이 존재한다. 특히 서로 다른 예술 분야는 특정 감각을 중심으로 발달해 왔기에 장애의 종류에 따라 특정 분야의 예술 활동을 하거나 향유하는 데 어려움이 크다. 미술이나 무용은 시각장애인이 접근하기 어렵고, 음악은 청각장애인이 접근하기 어렵다. 비장애인 주도로 성장해 온 현대 사회에서 이러한 장벽은 무너질 수 없는 크고 단단한 것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최근 연구자, 활동가 등의 노력으로 장벽에 조금씩 금이 가고 있다. 장벽을 허무는 작업은 북아메리카 토착민의 지혜를 빌려 생각하면 서로 다른 신체 특징이 장애가 되지 않도록 만드는 작업이다. 만약 모든 건물에 휠체어가 지나갈 수 있게 턱이 없고 엘리베이터가 있고, 복도나 화장실이 휠체어를 돌릴 수 있을 만큼 넓으며, 조명 스위치, 콘센트 등이 휠체어에 앉은 채 사용할 수 있는 높이에 있다면 휠체어 사용은 장애가 되지 않는다. 제주도의 대다수 예술 공간은 이러한 측면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예술 공간이 엘리베이터가 없는 지하나 2층에 위치한 경우가 많고, 1층이라 하더라도 문턱이나 계단이 있어 휠체어 사용자의 접근이 어렵다. 누구든 공간에 방문할 수 있도록 엘리베이터 등 공간에 적합한 시설물 설치가 필요하다. 전시장에서 점자나 음성 해설을 제공한다면 시각장애인도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공연장 역시 수어나 자막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청각장애인의 작품 감상이 가능하다. 따라서 장애인의 예술 활동과 더불어 장애인이 예술을 향유할 수 있도록, 다름이 공존하는 예술 공간이 되도록 예술 공간을 바꾸는 일에도 지원이 생기길 바란다. <김연주 문화공간 양 기획자>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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