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삽화=써머 그 어떤 꽃도 하루 이틀에 피는 것이 아니다. 꽃 하나가 내 눈에 보일 수 있는 것은 얼마나 긴 시간을 필요했을지 모른다. 그리고 어디가 갈라지고 패어져야 하며 어떻게 지워지고 풀어져야 꽃의 윤곽이 나타나는 것인지도 우리는 알 수가 없다. 안쪽의 줄기를 곧게 세우기 위해서는 마냥 흔들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했을 것이며, 삶 하나를 따뜻함에 젖게 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찬비를 맞아야 했는지 알 수조차 없다. 수평선 너머 저쪽에서 당신이 가물거리는 호롱불처럼 흔들리며 점차 내 앞에 가까이 오다 어느 순간 꽃의 윤곽을 드러내는 것일 테니, 모든 꽃은 장구하고도 외롭다. 물컵에 세워놓은 꽃의 정적 속에도 내 시선이 닿지 못하는 또 다른 삶의 움직임과 애잔함이 낯선 시간을 견디고 있는 것을 보라. 흔들리지 않고 피는 사랑이 어디 있으며 아름다운 세계가 어디 있으랴. 가을 숲의 바스락거리는 길을 걸어 등을 보이며 사라지는 한 송이 꽃. <시인>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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