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나무의 계절-양민숙 매미 한 마리 녹나무에 들였다 울음소리 가벼우면 붉은 새순이 올라갔고 울음소리 무거우면 설익은 열매 주르륵 쏟아냈다 뽀득, 뽀드득 밟을 때마다 겨울이 다가왔다 포근한, 무게를 알 수 없는 눈을 시리지 않은 발로 밟았다 햇살 받은 녹음은 빛날수록 하얘지는데 눈 나무에서 눈 열매가 주르륵 쏟아지기도 했다 매미가 한차례 휘청 울었다 뽀득, 뽀드득 여름이 겨울과 걸어가고 있다 녹나무는 국내에선 제주도에서만 자생한다. 녹나무에서 화자가 여름과 겨울을 동시에 보는 것은 녹나무가 상록활엽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햇살 받은 녹음은 빛날수록 하얘지"고 녹나무는 시간을 건너뛰며 어느새 눈 나무가 된다. 녹나무는 비교적 덜 변하는 상록활엽을 갖기에 느림과 지체의 즐거움을 선물하지만 곁들여 상승과 하강의 놀라운 여행을 시행하며 산다. 때가 되면 새순을 올리고 매미의 울음소리나 열매를 키우고 떨어뜨리며 끝없이 자리를 빌려주거나 물려주고 있다. 그리고 녹나무 옆을 지나는 시인까지 끼어들고 그는 시리지 않은 발로 무게를 알 수 없는 흰 눈을 밟는다. "뽀득, 뽀드득"은 쌓인 눈을 세게 밟을 때 나는 소리이며 이 시에서 선율을 만드는 축을 구성하고 시인은 그 리듬을 걸어 여름과 겨울, 녹나무의 계절에 일어난 일을 어딘가에 더 적어두었을 것이다. <시인>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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