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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정의 목요담론] 넓은 시선, 적극적 호흡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입력 : 2023. 10.26. 00:00:00
[한라일보] 1416년 5월 6일, 태종은 제주안무사 오식(吳湜)으로부터 상신된 제주행정체제 개편에 대한 공문을 살펴보고 있다. 개국한 지 얼마 안 된 조선은 왕권 강화를 위해 전국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들이 있었던 때이다. 문서 내용에는 관리들이 제주 백성들을 제대로 다스릴 수 없는 고질적인 원인과 행정체제 개편 필요성을 건의하고 있었다.

당시 제주 행정체제는 한라산을 중심으로 한 4면에 모두 17개 현이 설치돼 있었다. 북면(北面)의 대촌현을 본읍으로 하고 동·서도에 도사수(都司守)라는 관리를 둬 인근의 군마(軍馬)를 고찰하는 것과 목장을 책임지게 했다. 하지만 땅은 크고 백성은 조밀하다 보니 소송이 빈번했다. 산남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목사가 있는 본읍을 왕래하는데도 어려웠다. 행정이 산남지역까지 직접적으로 미치지 못하자 직원들은 군마를 고찰한다는 핑계로 백성들을 탐해 폐단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목사와 판관들은 그 이유를 알지 못하며 해를 거듭할수록 커다란 병폐가 되고 있었다.

안무사 오식은 이런 배경 때문에 문무를 겸비하고 공렴정직한 현감을 임명해 지역을 살피게 할 필요가 있다고 하면서 제주목, 대정현, 정의현을 설치하는 개편안을 제안했다.

태종은 그해 7월에 대정현과 정의현을 설치해 현감을 파견했다. 이로써 제주목, 대정현, 정의현의 3읍 체제가 시작하게 된 것이다. 임금은 목사에게 업무의 적절한 권한과 위임을 주었고, 조선 후기 현 단위의 행정체계의 일부 변동을 제외하고는 조선왕조 500년을 이끈 지방행정체제로 자리 잡았다. 안무사 오식이 건의는 기록상 나타나는 제주 최초의 행정체제 개편이었다.

최근 민선8기 도정의 주요 공약인 행정체제 개편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제주도민 10명 중 7명이 제주도 행정체제 개편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는 설문에서 보듯이 도민들의 호응도가 높다. 도민경청회에서도 행정구역을 조정할 때 인프라 쏠림, 행정접근성 등 보완 돼야 할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됐다.

행정체제 개편에 대한 논의는 지난 2006년 특별자치도 출범 이후 2013년부터 10년이 지나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행정시 운영에서 도민들이 느낀 것은 도지사에게 집중된 권한에서 오는 불편함을 먼저 꼽았다. 그 가운데 주민들의 근린자치 욕구에 대한 대응 부족이 더해졌다.

600여 년 전 진행된 행정체제 개편은 왕조의 필요에 의해 백성들에게 왕권을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시스템 개선 차원이었다. 반면 이번 추진되는 행정체제 개편은 도민이 우선인 사회에서 위정자에게 개선을 요구하는 사항이다. 또한 도민이 요구하는 대민서비스는 풀뿌리 자치실현을 위한 민주성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이번 개편 논의는 지난 10년 그 어느 때보다 행정적 열의가 강하다. 앞으로 제주특별법 개정 외에 개선해야 할 과제들이 많다는 것도 잘 알 것이다. 그럼에도 도민이 요구하는 개편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넓은 시선에서 단계 진행에 적극적 호흡을 지속해 주기를 기대해 본다. <오수정 제주여성가족연구원 경영지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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