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될 무렵에 대한민국의 건축 성지는 경기도 '파주 출판도시'와 '헤이리 예술마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대 최고 건축가들의 작업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한국 건축의 최전선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같은 시기에 동종의 출판업계가 중심이 돼 형성됐음에도 두 도시의 성격은 판이하다. 출판사 사옥이 몰려있는 파주는 국가산업단지로 지정돼 다소 건조한 분위기였던 반면, 헤이리는 문화예술가들의 주거와 작업공간, 그리고 시민이 즐길 거리가 있어 좀 더 대중적이었다. 이렇게 두 도시는 태생 배경이 다름에 의해 동일 건축가의 작업임에도 차별화된 건축전략을 비교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건축답사지로서 남아있다. 지난 추석 연휴를 맞아 모처럼의 여유에 추억의 감성으로 헤이리를 방문했다. 초기의 분위기가 망가졌다는 소문은 익히 들어왔지만, 10여 년 만에 들른 헤이리 예술마을은 무질서한 자동차와 욕망 가득한 간판들의 표정으로 건축들이 보이지 않았다. 웨이팅을 했던 식당의 옆 건물은, '슈투트가르트 시립도서관'의 설계자로 당선되며 금의환향한 이은영 교수의 작은 전시관이었다. 꽤 열심히 이 신고전주의적 건축을 답사했었는데, 이제 혼돈의 헤이리에서는 알아보기가 쉽지 않았다. 인근에도 수풀이 우거져 폐허가 돼 있는 건축이 보였다. 설마 '딸기가 좋아'인가? 건축가 최문규와 조민석의 국내 데뷔작으로서, 발표 당시 전위적이고 파격적인 측면에서 헤이리 예술마을의 대표 건축이었다. 클라이언트인 '쌈지' 기업이 어려워지면서 운영이 쉽지 않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이렇게 방치돼 폐가가 되었을 줄은 몰랐다. 자식 같은 건축이 이리 상해버린 것을 지켜보는 두 건축가의 심상은 어떠할까. 동행했던 건축하는 딸에게 좋은 랜드스케이프 건축의 사례로서 대지와 연속된 건축표면 활용을 설명하고자 했던 의도도 사라졌다. 더불어 건축의 생명이 이리 부질없는 것인가란 생각에 허망해졌다. 반면, 2004년 건축된 조병수 건축가의 '카메라타'는 상황이 정반대이다. 건축주이신 방송인 황인용 선생이 아직도 건재하게 음악 감상실로 운영 중이다. 오히려 입장하기 위해 대기가 있을 정도였다. 아날로그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는 음악은 송판 노출 콘크리트의 건축과 빛에 녹아들어 여전히 감동의 공간을 연출한다. 천장에 매달려 있는 전시공간에도 올라가 봤다. 10여 년 전 답사의 기억들이 새록거린다. 조병수 선생의 흐뭇한 미소가 보이는 듯했다. 그래, 이 건축은 살아있다! 어느 가을날, 헤이리 예술마을의 두 집에서 '건축의 생명성'을 소환한다. 문화예술의 화려한 휘장 안에 숨겨져있었던, 자본의 욕망이 터져버린 도시에서 건축의 지속 가능한 생명성을 위한 해답은 건축의 본질에서 찾을 수 있다. 즉 인간의 셸터로서 탄생한 건축의 근저에는 '휴머니티'가 존재하는 것이고, 결국 삶 가운데 건축에서 비롯되는 휴머니티의 지속성이 건축을 살아있게 하는 궁극의 해법임을 보게 된다. <양건 건축학박사·가우건축대표>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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