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피는 날 꽃 지는 날-구광본 꽃피는 날 그대와 만났습니다 꽃 지는 날 그대와 헤어졌고요 그 만남이 첫 만남이 아닙니다 그 이별이 첫 이별이 아니고요 마당 한 모퉁이에 꽃씨를 뿌립니다 꽃피는 날에서 꽃 지는 날까지 마음은 머리 풀어 헤치고 떠다닐 테지요 그대만이 떠나간 것이 아닙니다 꽃 지는 날만이 괴로운 것이 아니고요 그대의 뒷모습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나날이 새로 잎 피는 길을 갑니다 삽화=써머 세상 어느 모퉁이에 꽃피는 날이 있고 지는 날이 있었다고 시는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만남이 있는데 이별은 무엇인가를 꽃에 의지해 말해 봅니다. 피는 꽃과 지는 꽃 사이에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꽃이 피어 있듯이 어느 꽃은 실제로 없었던 것처럼 피었다 가기도 하지요. 우리가 꽃이라는 존재에 대해 훤히 꿰고 있지 못하는 것처럼 꽃의 다녀감에 대해, 이별의 이치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고 감각하지 못합니다. 다만 그대가 떠난 것이라면 그대만이 떠난 것은 아니라는 것, 꽃 지는 날만 슬픈 게 아니라는 것은 마땅합니다. 그대의 떠남을 다른 사람의 떠남에 포함시켜 버릴 수 없는 게 괴로운 일이지요. 거리의 인파 속에 나타났다 홀연 사라지듯이 마음에 피었다 진 단 하나의 꽃이 있습니다. 그 꽃 지니 그대를 제일 모르는 사람처럼 외로워집니다. 어디선가 새 잎 핀다 해도 내가 청할 수 없고 내 마음을 나눠줄 수 없기 때문이지요. 바꾸고 싶지 않은 꽃이 있습니다. <시인>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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