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 공무원에서 전업 농사꾼이 된 허철훈 씨는 "농사도 자기가 좋고 행복해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은 지난달 12일 제주시 삼양동에 있는 농원에서 감귤 재배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철훈 씨. 신비비안나 기자 사회복지 공무원에서 '전업 농사꾼'으로 오래된 나무 품종 교체하며 고품질 승부 재작년 수확 하례조생 1관에 2만원 판매 "농사도 과학… 브랜드 감귤 생산 자부심" [한라일보] 그는 자신을 가리켜 '행복한 농부'라고 했다. 공무원으로 일하다 퇴직해 농사를 짓고 있는 허철훈(67, 제주시 아라동) 씨의 이야기다. 그는 "브랜드 감귤을 생산하는 일에 굉장히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며 "농사를 하는 게 행복하다"고 연신 말했다. |'배급서기' 기억… "고됐지만 보람" 그는 사회복지 공무원이었다. 도내 한 재단에서 일하다 30대 후반에 공직에 들어갔다. 초임치고는 늦은 나이었지만, 사회복지 전담 공무원이 생긴 지는 얼마 안 된 때였다. 이미 사회복지사 자격을 갖추고 있던 철훈 씨는 시 지역에 배치할 '3기 사회복지직'을 뽑던 1993년, 공무원에 임용됐다. 지금에야 사회복지 업무가 대상, 서비스별로 나눠져 있지만 뭐든 도맡아야 하던 시절이었다. 처음 발령받은 한경면에서 보리쌀과 쌀 포대를 이고 집집마다 방문하는 것도 철훈 씨의 일이었다. 생활보호 대상자의 생계비가 현금이 아닌 '현물'로 지급되던 때의 풍경이다. 그는 "시골 할머니들은 '배급 서기'라고 불렀다"면서 "가가호호 찾아다니며 한 달 먹을 식량을 됫박으로 나눠주던 일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20여 년의 공직생활은 힘들었지만 보람됐다. 그는 "사회복지의 꽃은 자활"이라며 도움의 손을 잡고 삶을 일으킨 이들을 떠올렸다. 행정 영역에서 지원이 어려울 때 '자원 발굴'에 나선 것도 새 시작을 응원할 수 있어서였다. "한 번은 비가 새는 낡은 초가집에 사는 노모와 청년을 알게 됐습니다. 생계보조를 받고 있는데도 경제적 능력이 없는 상태였지요. 과거엔 복지 예산도 제한적이라 이리저리 뛰며 자원을 발굴해야 했습니다. 감사히도 2000만 원쯤이 모아졌고, 새 집을 짓고 입주식까지 하게 됐습니다. 그때 많은 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두 모자는 비가 새는 집에서 계속 살았을지 모릅니다." |공부하는 농부… 바뀌는 감귤밭 오랜 공직 경험과 사회복지 분야 전문성 등은 인생의 자산이 됐다. 2016년 퇴임 이후에도 그를 찾는 곳이 많았다. 주위의 지원 요청에 홍익아동복지센터장으로 2년간 근무하기도 했지만, 그 직을 마지막으로 농사일로 완전히 방향을 틀었다. "남들은 퇴임 이후에 (관련 분야로) 제2의 직업을 찾는다고 하지만 농사를 짓는 게 굉장히 행복했다"는 그는 전업 농사꾼의 길을 갔다. 갑자기 밭을 사고 땅을 일군 것은 아니었다. 공직에 있을 때에도 농사는 해 왔지만, 있는 땅을 단순히 관리하는 차원이었다.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 가지치기를 했고, 수확도 힘들어 대개 밭떼기로 거래했다. 하지만 농사를 본격적으로 지으면서 지금의 농원을 싹 바꿔 나갔다. 가장 먼저 나무를 새로 심는 일부터 시작했다. 제주시 삼양동 약 2000평(6612㎡)에 심어진 오래된 감귤나무 400그루를 전부 뽑아냈다. 이후 전체 면적의 4분의 3에 국산 신품종인 하례조생 350여 그루와 한라봉 묘목 170여 그루를 심었다. 철훈 씨는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나무를 새로 심고 4년간 키웠다"고 말했다. 농사에 뛰어든 뒤에는 공부도 시작했다. 2017년부터 2년간, 일주일에 한 번 8시간씩 제주농업마이스터대학에서 농사일을 배웠다. 그때 깨달은 게 "농사도 과학"이라는 거였다. "감귤을 키울 때는 전정만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자기 농장, 귤 종류에 맞게 영양분을 주고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그러니 배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금도 시간이 될 때마다 꾸준히 강의를 듣고 있지만, 아직 50%도 모르는 것 같습니다." 허철훈 씨가 새로 심고 가꾼 하례조생은 또 한 번의 수확을 앞두고 있다. 신비비안나 기자 달라진 철훈 씨의 농원에선 2021년 첫 수확이 이뤄졌다. 그가 타이백 재배로 키운 하례조생은 당시 1관(약 3.75㎏)에 2만1700원에 판매가 됐다. 1관 당 3000원 안팎인 노지감귤과 비교하면 10배가량 높은 가격이었다. 생산량보다 고품질로 승부한 결과였다. "최근에 뉴스에도 나왔습니다. 감귤 파치 값이 6년 전 단가 그대로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파치 하나도 안 팝니다. 정확히는 안 파는 게 아니라 없어서 못 파는 겁니다. 당도가 높고 맛이 있으니 브랜드(제주감귤농협 '불로초')를 달고 백화점 등에 납품됐습니다. 직접 지어보니 농사도 자존심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에 4000~5000원 하는 사과가 있듯이 저도 하나에 1000원짜리 감귤을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소비자가 원하는 감귤을 만들어 수익을 높이고 농가 자존심도 세우고 싶습니다." "전정가위를 들면 무아지경에 빠지고 행복하다"는 철훈 씨이지만 "(농사나 조경 일이) 보통 손이 가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자신처럼 퇴임 이후 농사를 생각하는 이들이라면 겉으로 보이는 것 너머까지 생각해야 한다는 조언이기도 하다. "저는 직장 생활을 할 때보다 지금이 더 행복합니다. 농사를 하고 조경수도 심으면서 나만의 공간을 가꾸는 일이 힘들어도 즐겁습니다. 하지만 전원생활 로망이나 겉보기에 좋다고 해선 시작해선 안 됩니다. (잘 가꿔진) 잔디밭이 보기엔 좋아도 끊임없이 골갱이(제주어로 호미) 들고 잡초와의 전쟁을 해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1시간은 좋아서 할 수 있지만 피동적으로 움직인다면 모두 스트레스입니다. 농사도 자기가 좋고 행복해야 할 수 있는 겁니다." 수많은 삶은 오늘도 흐릅니다. 특별한 것 없어도 하나하나가 소중한 이야기입니다. 그 이야기가 모여 비로소 '우리'가 됩니다. '당신삶'은 우리 주변의 다양한 삶을 마주하는 인터뷰 코너입니다. 그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분들은 언제든 문을 열어 주세요. (담당자 이메일 jieun@ihalla.com)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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