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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학주의 詩읽는 화요일] (42)분홍 나막신-송찬호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입력 : 2023. 11.14. 00:00:00
님께서 새 나막신을 사 오셨다

나는 아이 좋아라

발톱을 깎고

발뒤꿈치와 복숭아뼈를 깎고

새 신에 발을 꼬옥 맞추었다



그리고 나는 짓찧어진

맨드라미 즙을

나막신 코에 문질렀다

발이 부르트고 피가 배어 나와도

이 춤을 멈출 수 없음을 예감하면서

님께서는 오직 사랑만을 발명하셨으니

삽화=써머



당신이 새 나막신을 사 오셨고, 나막신 안에 들어가라는 당신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싶어 나는 발뒤꿈치와 복숭아뼈를 깎아 나막신 안에 들어갑니다. 당신에게 나를 맞추는 일은 여기까지 하면 될까요. 내 믿음도 얼마 가지 못할 텐데. 당신마저 내 옆에 오래 머물지 못할 텐데. 나막신은 어디에서 온 것이며 누구의 소유이며 나를 짓찧어 나막신에 밀어 넣는 일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요. 나막신 안에서 본 나는 정말 나 자신이었나요. '사랑'이라는 시장에 흔히 나오는 그럴듯한 각종 신발들, 충동 구매하지는 마세요. 자발적이라 하고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 말 또한 액면 그대로 믿을 수는 없습니다. 달리 방법이 없어 내 몸과 영혼을 계속 깎아 주어야 하는 나막신은 나막신이 아니며, 멈출 수 없는 춤은 춤이 아닙니다. 배려와 염려와 자기희생이 부족한, 강요와 요구와 바람만으로 발명된 무언가 미심쩍은 데가 있는 당신의 분홍 나막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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