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산방산에는 또 다른 이름이 숨어있다. 산방산은 이 일대에서 워낙 높고 사방이 벼랑이어서 경관도 독특한 산이다. 당연히 최고의 지형지물이다. 거의 모든 방향과 거리는 이 산을 기준으로 했을 것이다. 이런 관행은 일시적 현상으로 그치는 게 아니다. 세월이 흐르고 언어사회가 바뀌어도 계속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전의 이름을 이어받지 못하고 어떤 이유로 단절되었다 해도 새로운 집단은 다시 그 이름을 자신들의 방식으로 만들어 붙였을 것이다. 고구려어의 잔영 ‘수리봉’ 혹은 ‘수리뫼’ 산방산의 이름이 또 있었을 것이라는 추정에는 여러 가지 근거들이 있다. 첫째는 이제 다 잊혀 아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이 지역에서는 산방산 꼭대기에 끼는 구름을 상미구름이라 한다는 채록이 있다. 산방산은 바닷가에 인접해 있는 높은 봉우리여서 간혹 정상에 마치 삿갓 모양 구름이 끼는 때가 있다. 이 상미구름의 '상미'가 무슨 뜻일까? 산방산 꼭대기에 걸쳐있는 구름. 산방산유람선 대표 이치우(사진작가) 제공 덕수마을 이름 속에 새겨진 비밀 또 하나의 단서는 오늘날의 덕수리라는 지명에 있다. 한자 표기는 德修里(덕수리)다. 오랜 역사를 지닌 마을이다. 1946년 8월 1일 제주도제가 실시될 때 제주도 남제주군 안덕면 덕수리가 되었다. 2006년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하면서 남제주군이 서귀포시에 통합되어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덕수리가 되었다. 산방산의 바로 북측에 있다. 덕수리의 '德修(덕수)’라는 지명은 어디서 출발한 것일까? 德(덕)이란 ‘크다’ 혹은 ‘어질다’라는 뜻이다. 修(수)는 ‘닦다’, ‘다스리다’, ‘고치다’라는 뜻으로 쓰는 한자다. 그렇다면 '덕수'라는 지명은 무엇을 나타내려고 지은 것일까? 이리저리 조합해 보지만 적당한 뜻을 유추해 내기가 쉽지 않다. 이것은 한자어가 아니라 음을 나타내려고 동원한 글자라는 것이 된다. 고대인이 '덕수'라고 발음한 것을 뜻과는 상관없이 표기했을 뿐이라는 뜻이다. 이런 관점에서 돌이켜보면 '덕수'의 '수'는 '어승생'의 '생'과 관련한 여러 가지 음들과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된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수많은 산 이름에서 修理(수리), 술(述) 혹은 술이(述爾), 수래(水來), 거(車, 수레 거), 주(酒, 술 주), 수(首) 혹은 수을(首乙) 같은 한자들이 나타난다. 이 글자들은 '수리'를 차자한 글자들이다. 다랑쉬오름의 한자 표기에서도 다랑시악(多郞時岳), 다랑수악(多浪秀岳), 월랑수(月朗岫), 월랑수(月郞峀) 등 時(시), 秀(수), 岫(수), 峀(수) 등을 볼 수 있었다. '상미'의 '상'이 바로 '수리'다. '수리'는 'ㄹ' 탈락 과정과 축약이 일어나면서 '쉬' 또는 '수'가 되는 것이다. 특히 제주도의 지명에서는 '솥', '삿', '생', '싕' 등으로도 분화했다. 튀르크어와 일본어에서도 공통기원의 '덕' 그렇다면 '덕(德)'이란 무얼 말하는 것인가? 이 글자는 '어질다'는 뜻과 '크다'는 뜻이 있다. '어진 수리'라는 말은 존재하기가 어려운 말이 된다. 그렇다면 '큰 수리'일까? '크다'는 뜻을 갖는 한자는 사용빈도가 훨씬 높은 '대(大)'도 있는데, 왜 '덕'을 썼을까? 여기에 사용한 '덕'이란 한자에서 온 말이 아니다. 북방의 여러 언어에서 '덕'은 '높은', '꼭대기' 혹은 '산'을 지시한다. 퉁구스어권에서는 '덱-'을 접두사로 하여 '높은'의 의미로 쓰여 '(높게) 날다', '새(bird)' 등을 나타낸다. 몽골어권에서는 '데게-'를 접두어로 '위', '날다', '(높이) 뛰다' 등으로 쓴다. 그러므로 산방산의 또 다른 지명으로 '덕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안덕면 덕수(德修)는 고유어를 표기하고자 한자를 빌려 쓴 것이다. 그 뜻은 '산봉우리' 혹은 '봉우리가 우뚝하게 솟은 높은 산'이라는 뜻이다. 덕수마을 지명은 이 산 가까이에 있어서 붙은 이름이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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