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봉사는 일이 아닌 쉼"이라고 말하는 현창희 씨는 자원봉사 '전도사' 같았다. 그는 봉사를 통해 "보람과 긍지를 느끼며 굉장한 에너지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신비비안나 기자 IMF 당시 어려움 겪다 '보육교사'로 새 출발 50대 후반 찾아온 건강 이상에 삶 방향 전환 "경제적 역할보다 사회에 공헌, 헌신하고파" 청소년 위한 봉사하며 자원봉사 경험도 공유 [한라일보] "그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20여 년 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시절, 일궈왔던 농사일과 사업을 모두 잃었던 현창희(63, 애월읍) 씨가 말했다. 어린이집 교사였던 아내를 따라 마흔 후반에 '보육교사'로 일하며 새 삶을 이었지만, 이후 10년쯤 되던 해에 또 다른 위기에 맞닥뜨렸다. '암'이었다. 이상 신호는 건강검진에서 감지됐다. 재검사 결과 대장암 1기 판정이 내려졌다. 창희 씨는 "2·3기로 가는데 한 달이 안 걸릴 수도 있는 상태였는데 정말 다행히 빨리 발견했고, 바로 수술까지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조기 발견 덕이 컸다. 창희 씨는 수술 이후 5년이 지나도록 재발병하지 않아 현재는 완치 판정을 받은 상태다. 하지만 나이 58세에 찾아온 건강 이상은 그의 인생의 방향을 바꾸게 했다. "어머님이 59세에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뿐만 아니라 저희 외가 식구들도 전부 일찍 유명을 달리하셨고요. 저 역시 외가를 닮았으면 오래 살진 않겠구나 하는 생각은 갖고 있었는데 제가 암에 걸린 시점도 (어머니가 돌아가신 나이) 그쯤이었습니다. 그때 생각이 굳어졌습니다. 60살 넘게 인생이 주어지면 이젠 나의 인생이 아닌, 사회에 공헌하고 헌신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요." |거리 위 아이들… "내 갈 길 생각" 그 다짐처럼 창희 씨의 삶은 암 수술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여태까진 먹고 살기 위한 경제적 역할이 컸지만 앞으로는 "다른 인생"을 살고 싶다는 마음이 일었다. 창희 씨가 자원봉사의 길을 걷게 된 것도 그때부터다. 고민 끝에 우선 공부를 시작했다. 지난 2018년에 방송통신대학 청소년교육과에 들어갔다. 창희 씨는 "사회봉사 활동도 자기 전문성을 갖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청소년 분야로 마음을 정한 것은 오랜 친구의 권유였다. 오랫동안 주일 학교 교사로 청소년을 만나왔던 창희 씨의 마음도 동했다. 그는 대학 공부를 하며 거리로 나갔다. '아웃리치'(outreach, 찾아가는 거리상담) 활동으로 지역 청소년을 하나 둘 만났다. 현장에서 배우고 경험하고 싶어 자원한 봉사였다. 당시 거리 위에서 마주했던 아이들을 떠올리며 창희 씨는 "불안했지만 에너지가 넘쳤다"고 말했다. 대하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과 달리 솔직히 다가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한 여학생을 만났던 일이 기억에 남습니다. 아버지가 술을 먹고 구타를 해서 가출했다는 아이었습니다.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상상치 못한 충격을 받아 잠을 못 잤습니다. 아이들은 잘못이 없는데 기성세대가 힘들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제가 갈 길을 생각했습니다. 청소년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남은 인생을 자원봉사를 통해 아이들과 함께해야겠다고 말입니다." 그는 '위기 청소년'의 멘토로 활동하며 아이들과 마음을 주고받기도 했다. 어느 순간 마음을 확 털어놓는 아이들에게 창희 씨가 되레 감명을 받았다. 그는 "옆에서 이야기만 조금 들어줘도 아이들은 안정을 찾는다"며 "아무 얘기 없이 함께 산을 오른다거나 같이 걸어주기만 해도 공감이 가능하다"고 했다. 지난 5일 '자원봉사자의 날'을 기념해 '2023년 전국자원봉사자대회'가 열린 부산을 찾은 현창희 씨. 그는 제주시자원봉사센터의 '자원봉사 스토리텔링 강사'로 활동하며 자신의 봉사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사진=현창희 씨 현재 도내 한 초등학교에서 특수아동 교육을 돕고 있는 창희 씨는 틈틈이 자원봉사자를 찾아가고 있다. 제주시자원봉사센터의 '자원봉사 스토리텔링 강사'로 활동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봉사로 얻은 경험과 삶의 의미를 나누기 위해서다. "전 자원봉사가 '일'이라기보다 '쉼'이라고 생각합니다. 봉사를 통해 보람과 긍지를 느끼며 굉장한 에너지를 얻고 있습니다. 제 삶을 윤택하게, 건강하게 만드는 것 같기도 하고요. 더 많은 분들이 봉사를 하며 얻는 힘으로 자신의 생업에 활력을 더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좀 부끄러워도 이게 사회에 공헌하는 일이고, 보람된 일이라는 것을 알리고 있습니다." 창희 씨의 말처럼 그의 봉사는 남이 아닌 '나'를 위한다. 해가 갈수록 일상생활과 동떨어지지 않은 삶의 일부가 되고 있다. 그가 말하는 원칙은 '부담 없이, 힘들거나 거창하지 않게'이다. "강사로 교육을 할 때도 할 수 있는 만큼 즐겁게 할 수 있는 봉사활동을 선택하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힘보다 오버해선 안 됩니다. 몇 시간을 들여 하는 봉사활동만 봉사가 아니라, 단 10분이라도 할 수 있는 활동을 찾는 게 중요합니다. 하다못해 가정에서 흐트러져 있는 신발을 정리하는 것도 봉사입니다. 어렵게 생각하지 않으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지난 5일은 '자원봉사자의 날'이었다. 현재 자원봉사를 하고 있거나, 이를 고민하는 누군가에게 창희 씨가 전하고 싶은 말도 다르지 않았다. 취재·글=김지은 기자, 영상=신비비안나 기자 ◇ 당신의 삶이 이야기입니다(당신삶) 수많은 삶은 오늘도 흐릅니다. 특별한 것 없어도 하나하나가 소중한 이야기입니다. 그 이야기가 모여 비로소 '우리'가 됩니다. '당신삶'은 우리 주변의 다양한 삶을 마주하는 인터뷰 코너입니다. 그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분들은 언제든 문을 열어 주세요. (담당자 이메일 jieun@ihalla.com)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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