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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경의 건강&생활] 정신 실종 신고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입력 : 2023. 12.27. 00:00:00
[한라일보] "스마트폰을 끼고 살아요" 우울, 불안, 집중 저하 등 진료실을 찾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스마트폰 과몰입은 대부분의 경우에 동반되어 있다. 어린 자녀를 동반한 부모가 진료를 받는 사이 아이 손에 스마트폰을 들려주며 대기실에서 기다리도록 하는 모습은 매우 흔한 풍경이다.

과거 텔레비전(TV)은 '바보 상자'라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TV는 고전이 되었고 손에 쥔 채 어디든 갈 수 있는 스마트폰이 우리 정신을 쏙 빼놓고 있다. 그럴 만도 하다. 스마트폰은 이제 TV, 전화, 도서관, 영화관, 지갑, 놀이터, 지도 심지어 친구가 되었으니까.

인간이 편리함을 원하고, 워낙 이야기와 이미지를 좋아하며, 다른 사람과 세상에 연결되고 싶어 하기에 지금 우리가 누리는 과학기술이 실현됐다. 그런데 왜 점점 편리해지는 세상에서 우울, 공황, ADHD, 강박, 자폐, 중독, 따돌림, 학교 폭력, 묻지마 폭력은 늘어만 갈까?

인간은 수억 년 전 농사 지을 줄도, 동물을 가축화할 줄도 몰랐던 때부터 공동생활을 해왔다. 계통발생학적 연구에 따르면, 약 5억 년 전의 초기 생명체는 움직이다가 위험한 상황에서는 죽은 척하는 신경계를 가지게 됐다. 이후 여기에 덧붙여 싸우거나 도망치는 교감신경계가 발생했고, 약 2억 년 전 새로운 자율신경이 출현해 이전의 두 신경을 총괄 지휘하게 됐다. 이전까지의 두 자율신경이 혼자 생존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마지막에 발생한 포유류의 자율신경계는 함께 살기 위한 시스템이었다.

새로운 자율신경이 감독하는 인간의 신경계는 일명 '사회참여시스템'이라 불리는데, 이는 심장 박동을 느리게 하고 상대와 눈을 마주치며 편안한 얼굴 표정을 짓고 부드러운 목소리를 내며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게 하는 작용을 한다. 그리고 장기와 근육의 상태도 편안하게 한다. 이전의 두 자율신경이 두려움에 대해 얼어붙거나 싸움 혹은 도망침의 반응이었다면, 인간의 자율신경계는 두려움을 진정시킨 채 친화적인 상호작용을 하기 위해 탑재된 기능이다. 즉, 인간은 상대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정서가 조절되기에 고립되어서는 평안에 이를 수 없도록 디자인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사회를 이루어 살고 있다. 놀랍지 않은가!

갈수록 커지는 인간의 두려움과 의사소통의 장애는 스마트폰·미디어 과몰입과 상관이 깊다. 스마트폰이나 미디어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잘못 사용해서 문제다. 스마트폰과 미디어를 보느라 눈앞의 가족, 친구와 상호작용은 서툴고, 스스로 어디에 주의를 둘지 판단하고, 집중을 유지하며, 세상을 파악하고, 자신과 타인을 신뢰하는 힘 모두 몹시 취약하다. 그러니 더욱 스마트폰과 미디어로 도망쳐 가상현실에서 위로를 얻는다. 전화 통화가 두려운 이들을 훈련시켜 주는 학원이 서울에 생겼다는데, 이제 감정 조절과 대인관계를 정신건강의학과나 상담소 어쩌면 학원에서 배우는 시대가 된 것이다. 오호통재라.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누구인가?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신윤경 봄정신건강의학과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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