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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상철의 목요담론] 제주의 풍토와 산남(山南)의 예술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입력 : 2023. 12.28. 00:00:00
[한라일보] 예술은 미적 측면에서 풍토(風土)와 관련이 있다. 풍토는 용어 자체로만 보면, 바람과 토양이다. 풍토는 지형과 기후와 같은 자연환경과 이의 영향으로 형성된 인문환경까지도 포함된다.

인간 삶의 저변을 형성하는 근원적인 요소로서 어떤 지역의 지역성(regionality)을 파악할 수 있는 기본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풍토는 각각의 지역이나 국가가 갖고 있는 미의식의 토대가 되기도 한다.

풍토는 원시적으로 보면 인간 삶의 편안함을 결정지어 줄 조건이라 할 수 있다. 남방은 날씨가 고르고 농토가 비옥하여 온유한 삶으로 자연을 향유하고, 북방은 척박해 투쟁적으로 자연을 극복했다. 유추해 보면 살기 편한 곳에서 구상미술이 흥성하고, 험한 곳에서 추상미술이 발아되었다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제주의 예술도 풍토와 연관된다. 제주는 따뜻하고 경치 좋은 관광지로 알려져 있지만, 과거에는 기후가 불순하고 땅이 척박한 절해고도라 삶의 조건이 순탄치 않은 곳이었다. 제주의 지역성은 자연을 관조하기보다, 오히려 실존의 처절함으로 자연을 극복하는 데 있었다.

불구형사(不求形似), 추사선생이 흠모했던 소식의 말이다. "대상물의 형상을 닮게 그리기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의미를 확대하면 "예술은 자연의 실제적 모방보다 의(意)를 중시하여 인간의 정신성을 바탕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추사 김정희는 척박한 자연환경과 유배의 처절한 고독, 삶의 고통 등을 붓 끝에 담아 표현했다. 추사의 특성적 예술 심미는 160년이 지난 지금에도 현대적이다. 소암 현중화는 제주의 풍토에 무위적 삶을 맡겨, 도포자락과 흰 수염 휘날리며 춤사위 같은 붓질로 일생을 풍미했다. 소암은 험절한 필획에서 제주인의 야일함을 표출했다.

변시지는 폭풍우 속에 위태로운 초가집, 지팡이 짚은 외로운 노인과 말 한필, 풍파에 떠맡겨진 돛단배 하나로 절대 고독과 외로움을 가슴에 녹여냈다. 이들이 그동안 일군 예술은 가히 제주 풍토적이며, 삶의 혹독함을 극복하는 인간 정신이 투영된 성격미가 있다.

사람은 오늘에 충실해야 한다고 한다. 과거도 오늘이었고 미래도 날마다 오늘이 될 것이다. 그리고 역사에는 선자와 후자가 있다. 후자는 선자와 달리 '기회의 시간'을 갖게 된다. 서귀포에 가면'존재, 너의 어두움'을 명제 삼아 수많은 군상을 그리는 고영우 화백이 있다. 고 화백 뿐 아니라 미래에 많은 이들이 선자의 뒤를 이을 것이다.

"미술에서 실재는 대단히 인위적인 것이며 재창조되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라는 프랜시스 베이컨의 말이다. 고 화백을 대신한 것 같은 이 말을 통해 서귀포의 풍토적 언어가 새롭게 오버랩 된다. <양상철 융합서예술가·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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