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자도가 고향이자 한림수협 경매사로 일하는 박봉순 씨에게 바다는 "오래 살았기 때문에 익숙한 곳"이다. 그는 2024년, 새해 소망의 하나로 '만선'을 기원했다. 사진=신비비안나기자 고향 추자도서 나고 자라 '바다'를 일터로 보조 거쳐 경매사로… 숨 가쁜 아침의 연속 "배 타지 말아라 했던 부모님, 그 힘듦 알아" 어민들 고생해 잡은 수산물 제값 받기 보람 [한라일보] 그의 아침은 새벽 4시부터 시작된다. 바다에 나갔던 어선들이 배 한가득 고기를 싣고 돌아오는 날이면 더 분주해진다. 제주시 한림수협에서 '경매사'로 일하는 박봉순(42) 씨의 얘기다. 동이 트기도 전에 불을 밝히는 어판장에서 그는 매일 같이 아침을 깨우고 있다. |호기롭게 시작한 경매일… 베테랑이 되다 그의 일터는 '바다'다. 추자도가 고향인 그에게 바다는 "오래 살았기 때문에 익숙한 곳"이다. 2011년에 수협에 들어와 경매사로 일한 지는 7~8년쯤 됐다. 경매사 경력으로 따지면 한림수협 안에서 세 번째이지만, 지금 있는 경매 부서에선 가장 오래됐다. 봉순 씨를 포함해 경매사 3명이 판매과에서 일하고 있다. 지금은 고참 축에 드는 그에게도 보조 시절이 있다. 경매사가 부르는 입찰가를 기록하는 '만보사'(기록사)가 첫 역할이었다. 그 기간을 2년 정도 거치고 '정식 데뷔'했다. 경매사로서의 첫날은 지금도 생생하다. 늦어지는 경매 진행에 '왜 초보를 시키느냐'는 성난 말이 쏟아지자 그가 긴장을 감추려 목소리를 더 높였다. '잘하든 못하든 일단 보고 얘기 합써.' "경매 단가를 어느 정도 알고 들어가도 일단 긴장이 됩니다. 표찰의 숫자(중도매인이 쓴 가격)를 빨리빨리 봐야 하는데 처음엔 그게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지요. 1시간 경매할 게 1시간 반, 2시간으로 늦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화를 내는 분들도 있지만 처음에는 다 이해해 주고 하는 거니까 조금만 넘기면 금방 익숙해지고 베테랑이 되고들 합니다." 그 역시 숨 가쁘게 흐르는 경매가 익숙한 '베테랑'이 다 됐다. 경매가 있는 날이면 그의 아침은 바삐 돌아간다. 오전 4시쯤 일어나 위판장으로 출근해 들어온 물건을 확인하고 무게를 재는 일이 시작이다. 경매는 대개 오전 5시 반쯤부터 짧으면 4시간, 길면 6시간가량 이어진다. 봉순 씨는 "저희 수협은 제주에서도 물량이 많은 편이어서 양이 많을 때는 오전 11시 넘게 경매를 하기도 한다"며 "경매가 끝나면 이를 취합하고 어민들에게 돈이 나가도록 분류하는 사무를 보다 보면 시간이 금방 간다"고 말했다. |"어민들이 다시 바다에 나갈 수 있도록" 그가 일을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제값 받기'다. "경매사의 가장 중요한 업무"라고 봉순 씨가 말했다. 조합원인 어민들이 잡아 올린 수산물 판매를 위탁받은 이상 결코 허투루 할 수 없다. 경매 현장에선 경매사의 입에서 나온 가격이 '최종 입찰가'가 되기 때문에 말 한 번 쉽게 내뱉을 수도 없다. "제 가격을 받게끔, 또 가격을 더 잘 받게끔 노력하는 게 경매사의 역할입니다. 오늘 시세가 5만 원이면 최대한 5만 원에 맞춰 나가게 끌어가야 하지요. 중도매인들이 싸게 사고 싶어 가격을 낮춰 불러도, 최대한 시세까진 올릴 수 있도록 하고요. 사실 100% 맞추기는 어렵지만 근접하게 (가격이) 올라와야 어민도, 저희도 기분이 좋습니다. 그래야 어민들도 다시 물고기를 잡으러 바다에 나갈 수 있을 거 아니겠습니까." 경매 현장 모습. 사진=박봉순 씨 제공 그가 직업을 떠나 개인적으로도 마음을 쓰는 데는 바다 위 고됨을 알기 때문인 듯했다. '너는 배 타지 말아라'.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고향 추자에서 뱃일을 했던 아버지, 그곳에서 여전히 해녀로 일하는 어머니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제가 어릴 때만 해도 배로 벌이를 해서 성공하는 사례가 없었습니다. 저도 어린 마음에 '나는 배 타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고요.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습니다. 배가 워낙 크고 잘 돼 있어 하나의 '기업'으로 볼 수 있고, 저희 수협에는 젊은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래도 이쪽에 와서 일을 해 보니 우리 부모님이, 어민들이 이렇게 힘들게 일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경매가 모두 끝난 한림수협 위판장. 사진=신비비안나 기자 2024년, 새해를 맞은 그의 소망은 삶의 터전인 바다에 놓인다. 두 아들의 아빠이기도 한 봉순 씨는 "개인적인 희망으로는 아이들이 안 아프고 건강했으면 싶다"면서도 "수협인으로선 조합원들이 만선했으면 좋겠다. 저희 직원들도 힘내고 있지만, 조금 편하게 일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고 했다. 또 다른 바람도 꺼내 놨다. 지난해부터 불거진 일본 원전 오염 이슈 등으로 인한 피해를 딛고 일어설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사실 현장에선 아직 피부로 느껴지진 않지만 그 여파로 인해 수산물 소비를 기피하는 영향이 있는 것 같아 걱정은 됩니다. 그렇지만 조합원들이 매일 같이 좋은 고기를 잡아오고, 도내 모든 수협에선 하루 한 번씩 방사능 검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검사 결과 이상이 없다는 통보가 이뤄져야 경매를 진행하고 있고요. 이렇게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빠르게 대처하고 있으니 믿고 드셔도 됩니다. 수산물 안정성은 저희가 보장하겠습니다." 취재·글=김지은기자, 영상=신비비안나기자 수많은 삶은 오늘도 흐릅니다. 특별한 것 없어도 하나하나가 소중한 이야기입니다. 그 이야기가 모여 비로소 '우리'가 됩니다. '당신삶'은 우리 주변의 다양한 삶을 마주하는 인터뷰 코너입니다. 그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분들은 언제든 문을 열어 주세요. (담당자 이메일 jieun@ihalla.com)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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