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기사를 쓰면서 자주 쓰는 단어 '수밖에'. 이 말은 의존명사 '수'에 '그것 말고는'이나 '그것 이외에는'이라는 뜻을 가진 조사 '밖에'가 이어진 구조다. 무조건 붙여 쓸 수밖에 없는 불가분의 관계다. 현재 제주사회에도 '수밖에'라는 말을 자주 쓸 수밖에 없다. 전쟁이나 고금리 등 국내외적 환경을 배제하더라도 제주만이 갖고 있는 문제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청년은 떠나고, 애는 낳지 않고, 노인은 늘고, 월급은 적고, 집값은 비싸고, 빚은 많고…. 최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2년 기준, 근로자들의 일·생활 균형(워라밸) 지수는 제주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제주는 56.2점(전국평균 58.7점)으로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13위로 하위권에 처졌다. 2021년보다 1.4점이 올랐으나, 전국 순위는 9위에서 4단계나 밀려났다. 평가 영역은 가정에서의 근로시간(일), 생활, 관련 제도, 지방자치단체 관심도 등 4가지다. 성적표 내용은 엇갈렸다. 근로시간에서는 17.1점으로 전국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반면 나머지 분야인 생활영역은 17.5점으로 전년 대비 3.6점 하락했고, 제도영역에서는 14.0점을 받으면서 전국 꼴찌의 수모를 당했다. 지자체 관심도도 7.5점에 불과했다. 타 지역 직장인들을 위한 '워케이션의 성지, 제주'라는 실상과는 달리 실제 거주하는 직장인들이 느끼는 워라밸은 멀기만 하다. '청년들은 왜 제주를 떠날까?'에 대한 답은 절대적으로 양질의 일자리 부족에 있다. 저출산(합계 출산율 0.9명) 문제는 가계 수입(2022년 기준 평균연봉 3565만원 전국 최하위)은 적고 주택가격은 전국 2위로 높다. 지난해 제주의 가계부채는 가구당 9176만원으로 1억원에 육박했다. 얽히고설킨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없을 지경에 놓였다. 연간 출생아 수는 3000명이 안 되고, 20~30대 청년들은 지난해 1000명 이상 순유출됐다. 반면 65세 이상의 노인인구는 12만명으로, 2027년 초고령사회(노인인구 20% 이상)를 목전에 두고 있다. 제주도의 전향적인 정책 변화가 없이는 제주에서의 삶은 나아질 희망이 없다. 밀레니엄 시대인 2000년 이후, 제주의 사회구조는 크게 변했다. 유입인구는 늘고 부동산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그러나 그 속에서 사는 많은 제주토박이들의 삶은 예전만치 못한 게 현실이다. 동남아 국가들처럼 평온했던 삶의 터는 내어주고 되레 삶은 팍팍할 뿐이다. 4.10총선이 100일도 안 남았다. 선거에 나서는 후보자들은 매번 표밭만을 집중 공략한다. 때문에 각종 장밋빛 공약이 남발한다. 선거에서는 승리자만 살아남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선거가 이들과 주변 사람들만의 잔치가 아닌, 정치에 그리고 정책에 등을 돌린 표심을 돌려세울 수 있는 모두의 잔치가 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향적인 변화의 자세가 필요하다. 정치권과 행정의 커다란 변화 없이는 제주의 밝은 미래도 없다. 제주를 떠나고, 아이를 낳지 않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바꿔 놓을 수 있는 묘수를 깊게 고민해야 할 때다. <백금탁 행정사회부장>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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