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세오름 특징은 정신이 ‘히어뜩’ 할 정도로 깎아지른 절벽 [한라일보] 걸서악은 걸쇠를 닮은 오름이 아니다. 이 오름은 남원읍 하례리 124번지에 있다. 봉우리가 두 개다. 북동쪽 큰 봉우리는 해발 158m, 남서쪽의 작은 봉우리는 해발 150m다. 비고 50m 이하다. 효돈천 계곡에 연해 있는 서쪽 사면은 100m 이상 깎아지른 절벽이다. 그야말로 정신이 '히어뜩'할 정도다. 깎아지른 절벽을 이루는 효돈천계곡 동사면의 걸세오름. 이 오름을 이곳에서는 걸쉐오롬, 걸세오롬, 걸시오롬, 걸쉐오름으로 부르고 있다. 이에 관해 디지털서귀포문화대전은 걸서악의 큰 봉우리와 작은 봉우리가 이어진 모양이 '걸쉐'를 닮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걸쉐'란 걸쇠의 제주어로서 대문이나 방의 여닫이문을 잠그기 위하여 빗장으로 쓰는 'ㄱ' 자 모양의 쇠다. 그러던 것이 소리가 바뀌어 걸세 오롬 또는 걸시 오롬 등으로도 부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의 한자 차용 표기가 걸서악(傑西嶽·傑瑞嶽·傑西嶽), 걸시악(傑時嶽·傑豕嶽) 등이라 한다고 했다. 두 계곡 사이에 있는 오름이라는 뜻이라는 주장도 있다. 여기서 '걸'은 개울 또는 도랑의 옛말이며, '세'는 새(사이)를 뜻하는 제주말로 보았다. 따라서 '걸세'는 두 개울 사이에 낀 오름의 뜻이라는 것이다. 이 오름 서쪽에는 효돈천이 흐르고 동쪽 기슭에도 쇠내기(하례천)의 지류가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걸쇠란 무엇이며 어떻게 생겼을까? 이미지검색을 통해 비슷한 그림을 찾으려 해도 수긍할만한 그림은 나오지 않는다. '대문이나 방의 여닫이문을 잠그기 위하여 빗장으로 쓰는 'ㄱ' 자 모양의 쇠'라는 사전적 설명을 친절하게 덧붙여 놓았다. 그렇다면 이 두 봉우리가 이어진 모양이 설명한 대로 'ㄱ'자형이라는 것인가? 이런 내용은 한동안 어느 유명 텔레비전에서 반복적으로 보여 준 적도 있다. 제주도 고대가옥에 걸쇠가 있었을까? 제주어에서 걸쇠란 '주로 움직이는 것에 붙어, 손잡이로 쓰거나 걸어 잠그거나 고정시키도록 하는 쇠붙이'를 말한다. 고대 제주에서 이런 용도로 쓸 만큼 쇠붙이가 널리 사용됐었을까? 걸세오름의 걸세를 풀면서 오늘날의 언어에서 유추되는 이미지를 끌어온 건 아닐까? 두 개울 사이에 낀 오름의 뜻이라는 설명은 어떤가? 일리 있는 설명처럼 느껴지긴 하지만 여기에도 모순된 의미가 담겨있다. 두 개울 사이라면 효돈천과 쇠내기(하례천)의 지류 사이를 말한다. 문제는 이 효돈천은 수긍할 수 있지만, 쇠내기의 지류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이 지류란 현지에서는 거의 인식 불가능한 지형이다. 이곳을 개울로 보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지형지물로서 중요한 의미를 담아야 하는 지명이 이처럼 모호해서는 오래가지 못하는 법이다. 그보다도 더 중요한 부분은 '걸'이 지시하는 개울에 있다. 이 '걸'이란 국어의 고어에서는 나타나지만, 제주어에서는 개울을 지시하는 말로 잘 나타나지 않는 말이다. 특히 개울이란 물이 상시로 흐르는 상태를 말하는 것인데, 효돈천은 그렇다 치더라도 쇠내기의 지류라는 지형에서는 이런 곳을 찾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이 주장도 수긍하기 어렵다. ‘서(西)’, ‘서(瑞)’, ‘시(時)’, ‘시(豕)’는 제주 지명에서만 나타나는 표기 오늘날 이 오름은 '걸세오름'으로 부르고 있지만, 그 이전에는 '걸세'로 불렀을 것이다. 1960년대 걸세오름에서 비석 돌을 채취했던 석공들의 숙소건물. 김찬수 그렇다면 '걸세'의 '걸'은 무엇인가? 이 말은 퉁구스어권의 여러 언어에서 '굴라'를 공통어원으로 여러 가지 형태로 분화했음을 볼 수 있다. 절벽을 지시한다. 에벤키어와 우데게어 '굴라', 네기달어 '굴라칸', 만주어 '굴라쿠', 오로첸어 '글라'로 나타난다. 이 말이 제주어에서는 한층 축약하여 '걸'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므로 '걸세'란 '걸+세'의 구조를 가지는 지명으로 그 자체로 '절벽이 있는 봉우리'다. 걸세오름이란 '걸세'라는 지명에 다시 봉우리를 나타내는 오름이 덧붙은 형태다. 이같이 '걸세오름'의 지명에는 북방어가 깊이 뿌리박혀 있음을 알 수 있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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