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마을 이름이 하천(下川)이면 어느 냇가인지 알아야 뜻하는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천미천이다. 이 섬의 143개 하천 중에 가장 긴 25.7㎞나 되는 냇가. 한라산 해발 1100m 지경에서 발원해 조천읍 교래리에서 냇가의 면모를 보이기 시작하며 동쪽으로 흐르다가 송당리에서 남쪽으로 우회전해 성읍리를 비롯한 여러 마을들을 거치며 내려와 성산읍과 표선면의 경계를 이루며 하천리에서 바다와 만난다. 산북에서 시작해 산남에서 바다와 만나는 독특한 냇가의 끝이며 바다로 향하는 새로운 시작점이다. 번영로가 표선에 도달하기 전, 하천리 가운데를 지나간다. 제석오름이 주봉을 이루면서 천미천 서쪽을 따라 바닷가까지 정주공간의 대부분이 펼쳐진 마을. 표선면 동쪽 끝마을이다. 신천리와 신풍리를 경계로 성산읍과 마주하고 있고, 서쪽에는 표선리와 가시리가 있고, 북쪽으로는 성읍리와 인접한다. 강시원 이장 달산봉과 이어진 느낌을 주며 제석오름이 마을 전체를 아늑하게 한다. 큰길가에서 가지처럼 뻗어나간 작은 농로들이 오밀조밀하게 밭과 밭 사이를 이어준다. 이러한 길들을 답사하다 보면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경관적 가치가 소중하게 느껴진다. 바닷가 자원과 관련해 예로부터 내려온 풍습이자 마을규약과 같은 불문율이 있었다. 자라는 기간 동안 그 누구도 채취를 금했다가 어느 정해진 날을 기해서 마을 해녀들 모두가 바다에 들어가 미역을 따는 것. 공동체의식의 구현이었다. 마을 주민 남녀노소 모두가 바닷가로 나가서 인산인해를 이뤘으니, 운반 작업과 갯바위 틈에 있는 미역까지 수확하는 행복감. 1970년대 중반까지 학교는 임시 휴교를 할 정도로 연중 가장 큰 행사였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과 해녀 일을 못하는 분들 집에까지 미역을 나눠드리던 공동체문화. 미역은 누구 개인의 소유가 될 수 없으므로 모두의 것이 될 수 있다는 규칙을 향약에 담아 실천하며 그 힘이 마을 구성원들에 의해 지탱된다는 것을 실천해 온 마을이다. 이러한 마을 문화는 자연스럽게 외부와의 접촉에서 강력한 결속력으로 작용한다. 마을 사람들끼리는 간혹 티격태격 하더라도 마을과 마을끼리 경쟁을 하거나 다툼이 있을 때, 가족의 일처럼 모여들어 대응하는 단합심은 이웃 마을에서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유명하다. 강시원 이장에게 하천리의 가장 중요한 자긍심을 묻자 자연스러운 대답은 "우리 마을 하천리의 정신자산목록 1호는 '승부근성'입니다." 다른 마을과 경쟁에서 지고는 못사는 사람들이라고 하는 외부적 평가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내일도 계속 이어질 마을공동체 일체감의 표상 하천리. 조상 대대로 마을공동체 규약에 의해 발전을 거듭해 온 마을답게 공감대 형성에 있어서도 개인적 이기주의보다 [한라일보] 마을 전체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는 문화가 아직도 박동치고 있다. 그 가치관이 발생시키는 에너지는 사람답게 이웃해 살아가는 행복추구로 귀결된다. 그 옛날, 왜구들의 침략은 농기구와 창검으로 막아냈지만 지금 밀려오는 자본의 힘을 상대로 하천리의 정신적 자산을 지켜내는 일은 참으로 버겁고 힘겨운 일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분명한 것은 놀라운 승부근성으로 이겨낼 것이라는 것. <시각예술가> 새소리 가득한 오후 풍경 <수채화 79cm×35cm> 근경의 돌담과 중경에서 화면의 중심을 잡는 돌담이 묘한 공간적 대비효과를 주고 있다. 직선이 있는 곳은 역시 집이라는 대상뿐이며 자연에서는 찾을 수 없다. 그런 차이를 시각적 강조용법으로. 햇살을 표현하기 위한 저기 모두의 노력에 감사를 보내게 되는 것은 그린 이유이기도 하다. 제석오름의 저녁 <수채화 79cm×35cm> 하루가 저무는 시간, 그리 대단한 존재감은 아닐지 모르나 끊임없이 세월을 이야기하는 포근함이 좋아서 그렸다. 높이 솟아 우쭐대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게 하는 힘이 있다. 차분하고 품격 있게 살아온 사람들의 마음을 닮아서 좋다. 사람을 따뜻하게 맞아주는 소박한 겸허를 발견한다. 불가에서 이르는 제석천이 민심을 빚는 형상이려니 생각하면서 그렸다.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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