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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애의 한라칼럼] 일체유심조(一切有心造)와 맑은 물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입력 : 2024. 01.30. 00:00:00
[한라일보] 한 스님이 유리잔 맑은 물에 한 방울씩 잉크를 떨어뜨렸다. 그러고는 탁해진 잔에 다시 맑은 물을 부었다. "인간이 태어났을 때의 마음은 무색무취한 맑은 물과 같지만, 세상을 살아가면서 다른 이들로 인해 맑은 물에 잉크가 번지듯 오염됩니다. 이미 탁해진 물에서 잉크와 맑은 물을 다시 분리하기 어렵듯 오염된 마음에서 잘못을 저지른 부분만 가려내는 것은 어렵습니다. 가장 좋은 마음의 정화 방법은 칭찬과 감사, 용서의 맑은 물을 부어주는 겁니다" 세상은 바라보기에 따라서 지옥이 될 수도, 극락이 될 수도 있음을 알려주는 지극히 단순한 진리, '일체유심조(一切有心造)'였다.

일체유심조(一切有心造)라는 말을 일종의 좌우명처럼 좋아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흘렀다.

삶을 살아오면서 수많은 좋은 말들을 만났고 잠깐 새로운 말에 혹하기도 했으나 자꾸 이 말로 되돌아오곤 한다. 그런데 요즘 가만히 보니, 이 말은 나의 '현상을 설명하는' 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의 모든 사고, 행동, 세상에 대한 태도를 다 내 마음이 짓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살아오면서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내재된 생각들과 감정들, 이에 따라오는 나의 행동은 일련의 연결선에서 전인적인 나를 나타내주고 있었다. 세상이 내 마음먹기 나름이라면 이런 내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아야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것이니 살면서 내 마음을 헤아리는 소중함을 다시 새겨 봄직 한 일이다.

내 마음을 헤아려야 할 일들을 가장 작은 단위의 사회인 가족관계에서 본다면 누군가는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윗 형제에게 저항해 그 가족의 화목을 깨트렸을 수 있고 또 누군가는 재산 문제로 가족 간 화목이 깨졌을 수도 있겠다. 예상치 못한 이런 상황에 놓였을 때 정화의 맑은 물은 누구라 할 것 없이 먼저 스스로에게 부어줘야 한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그 사람의 마음에 달려있으니 맡길 일이지만 나를 헤아리는 것부터 시작해야 함은 분명하다. 설령, 맑은 물을 붓다가도 다시 혼탁해지는 인간의 한계에 부딪치더라도 한세상 살면서 맑은 물을 붓는 연습은 될 수 있으면 많이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맑은 물을 붓는 연습은 나를 지킬 방법이자 나를 깨어있도록 안내한다. 관계에서 섭섭함이 생길 때, 가족이 섭섭하고 원망스러울 때, 잠시 자신을 지키기 위해 거리 두기도 필요하다. 서운함과 원망이 있는 자기 모습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분노와 증오가 자신을 구속하게 될 수 있고, 이는 타인이 아닌 자신을 가장 힘들게 하는 무기가 되어 결국 자신을 지키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도 있다.

분명한 것은 어떤 일이든 모두 용서하고 덮어 두라는 의미가 아니라 명확하게 알아차리라는 의미다. 명확해지기 위해서는 '생각'이 하는 일이 감정을 만들어내고 행동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생각을 멈추는 시간이 필요하다. 어쩌면 자신과 화해하고 타인을 용서하여 결국은 타인과 자신을 치유하고, 병든 가족과 사회를 치유하는 힘을 향해 가는 것은 모두가 '나'부터 시작해야 할 삶의 과제일 수 있는 것이다. 어느 시대이건 사회적으로나 가정적으로 갈등이 없었던 시대는 없었으니 갈등이 만연된 시대를 살면서 "나에게 맑은 불 붓기"는 '일체유심조(一切有心造)'와 함께 이 시대에 필요한 정화작업이다. <우정애 제주한라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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