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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웃고 울고… "탈춤 추며 삶 배웠죠" [당신삶]
[당신의 삶이 이야기입니다]
(18) 탈춤 잇는 고병도·홍진철 씨
대학 시절 동아리 활동으로 탈춤에 눈떠
'제주두루나눔'으로 모여 전통문화 이어
김지은 기자 jieun@ihalla.com
입력 : 2024. 01.31. 10:56:30

지난 23일 제주시 삼도2동 '제주두루나눔' 연습실에서 홍진철(사진 왼쪽), 고병도 씨가 탈을 들고 환하고 웃고 있다. 이들은 약 30년 전에 인연이 닿은 '탈춤'을 지금까지 이어 가고 있다. 강희만기자

입춘굿 탈놀이 복원 이후 매년 입춘 공연
"감동 컸던 그날의 공연… 소통하며 배워"


[한라일보] "이상하게 탈을 쓰면 내면에 있는 다른 걸 보여주게 돼요." 방금 전까지 탈을 쓰고 한바탕 놀던 홍진철(46, 제주시 구좌읍) 씨가 말했다. 탈을 벗자마자 우스꽝스러운 몸짓과 익살스러운 말투가 온데간데없어지니 한 몸에서 서로 다른 사람이 느껴졌다. "굉장히 소극적인 성격"이라는 진철 씨는 "탈을 안 쓰면 아무것도 못 한다"고 우스개처럼 말했다.

진철 씨와 고병도(47, 봉개동) 씨, 이 둘의 삶에 탈춤이 들어온 지 얼추 30년이다. 스무 살에 대학에 들어가 우연찮게 탈춤을 배웠고, 공연을 했고, 인연을 이어 갔다. 제주대학교 동아리 '탈춤연구회' 활동을 했던 병도 씨는 "동아리방을 기웃기웃하다 잡혀 들어간 게 관계의 시작"이라고 웃었다.



|우연히 삶에 들어온 '탈춤'

진철 씨의 시작도 비슷하다. 옛 제주산업정보대학 동아리 '우리문화연구회'를 통해 탈춤을 알게 됐다. 또래가 신나게 캠퍼스를 누비던 때에 "정말 어렵고 힘들게 배웠다"고 했다. 그는 "대학 시절엔 주로 봉산탈춤을 익혔는데, 수업이 끝나면 주차장, 강당 등에 모여 '앉아 뛰어'를 반복하면서 허벅지에 알통이 밸 정도로 연습했다"며 "그러면서 정기 공연을 하고, 도내 대학 동아리가 모이는 마당극에도 서게 됐다"고 말했다.

시간이 쌓이자 탈춤은 "소중한 재능이 됐다". 두 사람은 물론 두 대학 탈춤 동아리 출신이 2000년대 초반, 탈춤을 잇는 단체 '제주두루나눔'을 만든 이유이기도 하다. 시기적으로 분명한 계기도 있었다. 때마침 탐라시대부터 행해졌던 '입춘굿' 복원이 물살을 타면서 탈놀이까지 되살리는 움직임이 일었던 터였다. 당시의 과정을 전해 들었다는 병도 씨는 "1998년부터 준비를 시작해 1999년에 '입춘굿 탈놀이' 첫 공연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일제강점기에 사라졌던 입춘굿이 부활한 첫해였다.

"제주에는 입춘 날에 모든 심방들이 모여서 굿을 하고, 탈을 쓰고 놀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제주에도 탈춤이 있었다는 것에 대해선 사진 자료 몇 장이 전해지고 있고요. 그런데 육지부 탈춤처럼 명확하게 대본집이 남아 있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사진 속 탈춤을 봤을 때 육지의 그것과 비슷하거나 다른 점도 있었는데, 그 부분에 대한 자료를 하나씩 찾고 여기저기 이야기를 들으며 '제주도'적인 것을 많이 담으려 했다고 합니다." (병도)

고병도 씨가 자신이 전해 들은 '입춘굿 탈놀이' 복원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신비비안나 기자

|탈놀이, 다양한 삶의 변주

옛 기록을 바탕으로 새로 태어난 입춘굿 탈놀이는 거의 매해 제주두루나눔을 통해 관객을 만나왔다. 여신이 많은 제주를 상징하듯 오방각시 마당으로 시작하는 탈놀이는 밭을 갈고 씨를 뿌리는 장면 등으로 이어지며 한 해의 풍요를 빈다. 병도 씨는 "(탈놀이에서 악사들이 쓰는) 악기도 제주 심방들이 사용하는 연불 악기로 바꾸고, 탈춤 장단도 비슷하게 넣었다"면서 "4~5년 전부터는 고정화된 틀을 갖추게 됐다"고 말했다.

사진 속에 박제됐던 제주문화의 호흡을 되살렸다는 것은 이들에게도 의미가 깊다. 진철 씨는 "일제강점기에 없어졌던 탈놀이를 복원하고 맥을 이으면서 언제 어디에서나 공유할 수 있게 됐다"면서 "해외로 뻗어 가는 한류도 밑바탕은 전통문화의 창조적인 계승이다. 굉장히 획일적인 삶을 살게 되는 AI(인공지능) 시대에 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전통문화의 계승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두 사람, 개인적으로 탈놀이는 현실 곁의 '또 다른 삶'이다. 탈을 쓰고 서는 놀이마당에선 남자에서 여자로, 사람에서 동물로, 장벽 없는 변주를 한다. 입춘굿 탈놀이 무대에서 1인 2~3역을 소화하기도 한다는 이들은 탈 안에서 순간순간 모습을 휙휙 바꿔낸다.

"주로 동물과 여자 역할을 많이 했습니다. 요즘엔 영감 역할도 자주하고 있고요. 배역을 맡을 때는 이런저런 참고를 합니다. 할머니에게 일을 다 떠넘기고 한량처럼 술을 마시면서 노는 영감이 떠오르면 큰 목소리에 능청능청 걷고, 거들먹거리고요. 탈을 계속 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 어떤 모습과 행동이 느낌으로 옵니다. 그래서 탈춤을 배울 때도 춤부터 익히기보다 내가 맡은 배역의 탈을 쓰고, 계속 거울을 바라보고 있는 거죠. '나는 게걸스럽고 능청맞은 할아버지다', 이렇게 주입을 해야 그 모습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진철)

홍진철 씨는 "이상하게 탈을 쓰면 내면에 있는 다른 걸 보여주게 된다"고 말했다. 사진=신비비안나 기자

|완성은 '관객'… '사람'이 남다

탈춤은 크게 악사의 연주, 배우의 연기로 짜이지만 완성은 '관객'이다. 함께 웃고 우는 존재이자, 관객이 나고 들면서 이야기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르기도 한다. 병도 씨가 말하는 탈춤의 매력도 다르지 않다.

"탈춤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변동성이 많습니다. 풍물이나 판굿은 정해진 가락과 순서대로 쭉 진행을 하지만 탈춤은 연기하는 배우가 관객을 데리고 나와서 함께할 수도 있습니다. 단순히 준비한 걸 보여주는 게 아니라, 관객과 관계가 이뤄지는 부분이 더 많은 셈입니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정해진 대로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게 좋습니다."

제주두루나눔은 해외 무대에도 서고 있다. 문화 교류를 위해서다. 그럴싸하게 갖춰지지 않은 무대에서의 공연도 울림이 컸다.

"고려인 2세 할머니들이 계신 우즈베키스탄 요양원에서 아침 10시에 공연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한국 제주도에서 왔다고 말씀드리고 탈춤공연을 했습니다. 저희가 물질적으로 도와드릴 수는 없지만 노래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즐거워하시는 모습에 참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병도)

진철 씨도 공연을 하며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은 2004년 '한일 우정문화 교류'다. 그는 "첫 해외 공연인 만큼 해외여행을 간다는 느낌으로 갔지만 우리가 왜 탈춤을 춰야 하는지 마음가짐을 다시 갖게 되는 계기가 됐다"며 "관객에게 박수를 받는 것을 떠나 그곳의 사람들을 만나고 소통하며 삶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떠올렸다.

탈을 쓰고 연기하는 홍진철(오른쪽), 고병도 씨. 두 사람은 탈 안에서 순간순간 모습을 휙휙 바꿨다. 사진=신비비안나 기자

결국에는 '사람'인 듯했다. 이들이 탈춤을 계속하며 얻은 것 역시 '사람'이었다. 진철 씨는 탈춤을 '초등학교 때 배웠던 바른 생활 교과서' 같다고 했다. 그는 "탈춤을 추며 많은 사람과 만나 대화하고 소통하면서 다양한 삶을 배우고 있다"며 "바르게 살아가는 것을 알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병도 씨는 '좋은 사람을 만나는 창구'라고 답했다. 20년 넘게 탈춤을 함께해 온 두 사람의 입에서 짜 맞춘 듯한 대답이 나왔다.

"스무 살 때부터 탈춤을 추면서 만난 사람들과 지금까지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 공연을 하고 탈춤과 연관된 사람들을 계속 만나고 있는데, 모두가 좋은 어른들입니다. 저 역시 그렇게 나이를 먹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취재·글=김지은 기자, 영상 촬영·편집=신비비안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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