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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58)한림읍 귀덕리
풍요의 여신 영등할망이 들어오는 기쁜 마을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입력 : 2024. 02.02. 00:00:00
[한라일보] 거북등대가 있는 석촌도가 자연방파제 역할을 해주기 때문에 배를 통한 육지와의 교류가 용이했던 마을이다. 인근 선사유적 곽지패총과 연관 지어서 유추를 해도 까마득하게 오래전부터 이 섬의 관문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한 인식이 있지 아니하고서 구비전승돼 내려오는 무속신화 속성으로 볼 때 영등할망이 들어오는 곳으로 지칭 될 수 없는 것. 그래서 영등할망이 들어오는 바다를 보유했다. 바다를 생존의 수단으로 삼는 어느 마을인들 영등할망과 연관이 없으랴마는 석천촌으로 불리던 시기부터 막강한 영향력을 지녔기에 신화의 중심에 설 수 있었으리라. 매년 음력 초하루는 하늘의 북녘 끝 영등나라에서 출발해 제주의 1만8000 빛깔의 바람을 움직이는 바람의 신, 천하의 생명을 바람으로 불어넣는 영등할망이 오시는 날이다. 마지막 꽃샘추위와 더불어 봄 꽃씨와 해산물의 씨를 가지고 섬 제주를 찾아오는데, 그 들어오는 길목은 귀덕리 바닷가 포구 '복덕개'를 통해서다. 영등올레라는 표현은 그래서 너무 정겹다. 신비로운 포구 귀덕 복덕개에서 예로부터 영등할망맞이 당굿이 여러 날에 걸쳐 성대하게 치러져 왔다. 새봄의 시작을 알리는 생명력 넘치는 마을의 진가를 그냥 옛 무속신화 정도로 바라보기에는 안타까움이 크다. 관광스토리텔링 차원으로 생각하면 제주 봄축제의 보배라고 할 수 있는 자산이다. 제주섬을 대표하여 영등신을 맞이하던 역사적 영향력을 살필 수 있는 기록들이 많다. 1212년 탐라에 현을 설치하면서 석경현(石鏡縣)이라 불렀다. 당시에는 니커리와 중동 지역에 규모가 큰 집성촌이 형성돼 있었다. 고려시대 탐라의 번창지역이었기에 근래에도 마을 일대에서 옛 기와들이 출토되는 경우가 많다. 원나라가 탐라총관부를 설치해 직접 통치하던 시기에 14현을 설치하면서 이곳을 중국 중경지방의 지명을 따서 귀덕현(歸德縣)이라고 부른 것이 마을 명칭으로 굳어졌다고 한다.

한림읍의 가장 동쪽마을, 금성천을 경계로 애월읍과 마주하고 있다. 오름이 없는 마을이다. 대신 완만하게 바다를 향해 기울어진 평지가 모두 밭이다. 토질이 좋아서 풍부한 농산물 생산지역이였기에 사람들이 모여들어 대촌락을 이룰 수 있었으며 조상 대대로 출중한 인물을 배출시키는 경제적 자양분이 됐을 것이다. 어르신들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3개의 귀덕리로 나눠지기 전엔 밭이 1000개나 되는 마을이었다고 한다. 귀덕1리만 해도 경지 면적이 1324㏊에 양질의 밭이 383개다. 놀라운 성과를 거두고 있는 마을교육공동체 사업의 명칭이 '왓츠업(What's up)'이다. 밭을 이르는 제주어 '왓'에서 착안해 만들었다니 감동이다. 그만큼 귀덕리민이 밭에 대한 긍지는 대단하다.

양원호 이장

양원호 이장에게 귀덕1리가 가지고 있는 가창 큰 자긍심을 물었다. 대답은 간명하였다. "대물림에 대한 사명감입니다." 그러한 공감대가 있었기에 어르신들과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참여하고 마을주민들이 함께하는 '우리마을문화기록단' 활동과 같은 실천운동을 통해 삶의 방식과 정체성에 대한 마을공동체 차원의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책자까지 만들어서 성과를 공유하는 것은 외지에서 들어와 살고 있는 주민들과 이뤄낸 귀덕1리의 삶의 방식을 공유하는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아름다운 불문율을 지켜나가기 위해서라는 것.

귀덕1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잠재력은 역사성에 있다. 경관의 아름다움 또한 인간과 자연이 문화를 매개로 해 연결된 것이다. 신화라고 하는 방식을 통해 일체감과 공동체의 극복의지를 승화시키던 문화를 하나의 가치관으로 표현해낸 사람들. 문제는 역동성이다. 영등신화는 굿이라고 하는 연희요소에 의해 소통구조를 성공시켰다. 귀덕1리가 보유한 영등신화의 가치는 궁극적으로 일자리 창출로 귀결되고, 농외소득이라는 보물창고여야 한다. 마을축제 정도로 행정당국이 인식하고 있다면 커다란 오판이다. 단계적 발전 전략을 통하여 섬 제주의 대표적인 봄맞이 축제로 승화시킬 필요충분조건이 갖춰져 있는 소중한 문화자산이기 때문이다. <시각예술가>

눈부신 오후 돌담과 햇살
<연필소묘 79cm×35cm>

저 창문을 열면 바닷가 이름 복덕개 파도소리가 들어온다. 바람에도 빛깔이 있다는 영등신화의 사설을 뒤집으며 저 창가에는 빛이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소리가 들어올 것 같은 마음으로 그렸다. 지붕이 날아갈 것을 염려해 놀려놓은 돌들이 참으로 정겹다. 바닷바람의 무서움을 경험을 통해 익히 알고 있는 집 주인의 내공이 드러나 있다. 바람이 얼마나 미웠을까, 조상 대대로. 그래서 그 처절한 바람에 대해 시적인 아이러니를 동원해 신화를 만들었으니 영등할망이 가지고 오는 바람 속에 생명의 씨앗이 들어있다는 사실. 병고로써 양약을 삼으라는 가르침이 따로 있으랴. 삶을 가장 힘들게 하는 존재 속에 살아가게 하는 희망이 뿌리내려 있다는 지혜. 저기 돌담 가득 들어있는 사연들은 그러한 불굴의 희망가다. 몇 백 년 전에 복덕개 바닷가의 돌들을 가져다가 쌓은 것 같은 저 돌담들은 만리장성보다 의미가 크다. 저 집이 초가집이었을 시절부터 누군가 태어나 살아갔을 시간들이 켜켜이 숨쉬고 있는 풍경이다. 연필소묘가 가지고 있는 강점들을 살리려고 노력했다. 돌담의 질감을 이끌어주는 와트만지의 거친 질감이 더욱 빛의 강도를 높여주는 기능까지 지니고 있어서 즐겁게 그렸다. 길이 흐르는 방향에 따라 집의 형태도 따라서 잘려나간 모습이 숙명적이다. 주변의 분위기 또한 삶의 진한 향기가 풍기는 모습이라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돌담의 흐름 속에 짜임을 형성한 슬레이트집 벽이 묘한 구도로 감흥을 돋운다.

거북등대가 향하는 곳은
<수채화 79cm×35cm>

바다 빛깔이 유난히 짙은 날이 있다. 태양광선이 강렬하고 쾌청하며 바람이 잔잔하게 부는 날. 귀덕리의 상징과도 같은 거북 등대를 그리기 위해 오래전부터 준비해 그렸다. 극복과제는 구도다. 화면의 가로와 세로 비율에 맞게 등대의 위치를 잡은 것이 결코 단순한 작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등대의 존재감을 맞은편에서 무게로 눌러줘서 균형을 잡아야 하기 때문에 바다색이 짙은 날을 골라서 그려야 했다.

조간대에 위치한 바위섬은 천혜의 방파제다. 그 자연바위들의 울퉁불퉁한 면들이 햇살을 받아 경이로운 오케스트라를 연주하는 시간을 잡아내는 일이 이 풍경을 이끄는 시각적 에너지원이다. 하늘과 바다 그리고 등대. 너무 단순한 메시지이기 때문에 더욱 난이도가 높다. 오른쪽 구석에 살짝 보이는 현대식 방파제에는 원래 총천연색 벽화가 그려져 있으나 단색화 스타일로 현무암 회색에 맞는 색채을 가지고 작위적으로 그려 넣었다. 화면상의 조화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거북이가 등에 등대를 지고 가는 아주 고전적인 설정은 하나의 낭만이려니. 무엇이든 의미를 부여하고자 노력하는 인간의 욕구가 즐겁게 녹아있는 모습이다. 영등신이 들어오는 바다와 하늘을 향하여 길게 머리를 내밀어 바라보는 동작이 정겹다. 포구 안쪽 잔잔한 물위에 비친 등대의 모습에서 공간의 완결을 느끼게 된다.

오밀조밀한 갯바위들이 그 빽빽한 밀도를 텅빈 파란 하늘과 대비돼 거대한 리듬감으로 작용한다. 신화의 터전에 그려진 그림이라 더욱 애착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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