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묘'. [한라일보] 삶과 죽음 사이, 그토록 깊은 슬픔과 아득한 절망의 곁에는 누가 서 있을까. 장례식장에 모여드는 수많은 이들이 뭉쳐낸 슬픔의 거대한 무게 옆에는 늘 이 의식을 직업으로 치르는 이들이 슬픔과 절망의 무게에 동요 없이 단단하게 서있곤 한다. 의학으로는 명백하게 밝힐 수 없는 절체절명의 운명 앞에 갑작스레 맞닥뜨리게 될 때 우리는 절박한 심경으로 신과 인간 사이에 놓여 있다는 이들을 찾아 답을 구하곤 한다. 확신에 가까운 죽음이라는 끝과 불확실한 시작을 찾아 헤매는 희망 사이, 산 자들이 세차게 흔들리고 망자들이 미동 없이 침묵할 때 어떤 이들은 이 경계를 수시로 넘나드는 비일상적인 일상을 묵묵히 살아간다. '검은 사제들'과 '사바하'를 통해 한국형 오컬트 영화의 장인으로 주목받은 장재현 감독의 세 번째 영화 '파묘'는 '묘를 파다'라는 강렬한 제목을 갖고 있다. 영화는 '무덤을 파는 행위'와 그 행위를 직업으로 삼고 있는 이들의 삶을 골몰하게 바라본다. 오랜 죽음의 흔적을 좇아 자신의 삶을 다해 파고드는 직업인들, 즉 이 영화는 '무덤을 파는 이들의 삶'을 파고드는 영화다. 영화 '파묘' 속의 중요한 분기점은 '첩장'이다. 첩첩산중 속 고립무원 같은 배경에서 펼쳐지는 이 영화는 무덤을 파던 이들이 '무덤 아래의 무덤'을 마주하는 순간 관객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지점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동시에 영화 속 인물들이 끌려가는 상황을 인상적으로 그려낸다. 영화에게도 인물들에게도 운명적인 전환이고 필연적인 선택의 순간이다. 어려운 임무를 완수했다고 안도하는 순간 맞닥뜨리게 되는 또 하나의 더 크고 힘든 난관 그리고 그 난관 뒤로 어렴풋이 보이는 거대한 업의 의미가 영화 속 인물들의 마음을 요동치게 하고 단단하게 만든다. '파묘'는 그렇게 쉬지 않고 죽음으로 향하는 이들의 삶을 뒤쫓는 영화다. 이 영화 속 인물들의 여정은 때로는 순례길에 오른 이들의 모습과도 겹쳐 보인다. 가늠하기 어려웠던 마음을 품고 출발했던 이들은 함께 당도한 종착지에서 비로소 자신이 누구인지를 자신이 한 일이 무엇이었는지를 자신 곁에 있는 이들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게 된다. 내게 '파묘'는 삶과 죽음 사이에 있던 이들이 그렇게 죽음의 뿌리를 더듬어 내 삶의 몸통과 타인의 가지를 만지는 영화로 느껴졌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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