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바튼 아카데미' [한라일보] 인간과 인간은 자주 어긋나지만 또 예기치 못한 순간에서 겹쳐진다. 빽빽하게 들어선 대중교통 안에서는 타인과 가능한 멀리 떨어져 있고 싶어서 최선을 다하지만 혼자의 시간이 길어진 작은 방 안에서는 어두운 침묵을 지키고 있는 핸드폰 속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고 속절없이 그리워한다. 멀리 있는 지인도 한때는 가까이 있던 타인이었을 텐데 우리는 어쩌다 이 세상에서 서로가 서로를 발견해 각자의 영역에 저장하고 문득 못 견디게 타인을 그리워하게 된 것일까.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다. 먼저 연락을 하는 사람과 늘 누군가로부터 연락을 받는 사람. '잘 지내니?'라고 묻는 사람과 '잘 지냈어?'라고 대답하는 사람. 누군가는 MBTI를 예로 들며 이 둘을 나누겠지만 이 두 종류의 사람은 사실은 한 사람일 것이다. 거리를 좁히려는 사람도 더 멀어지지는 않는 사람도 같은 선상을 벗어나지 않았기에 가능해지는 것이 인연이다. 영화 '바튼 아카데미'와 '패스트 라이브즈'는 사람 사이의 거리에 관한 영화들이다. 낯선 두 사람이 각자의 삶 어딘가에서 만난 뒤 그 만남의 우연이 남긴 흔적들로 생의 목적지를 수정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도무지 합리적이지 않은 방법들로 교집합의 비밀을 발견해 내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무수한 데이터로 설명할 수 없고 명확한 처방이 존재할 수도 없는 한 사람과 한 사람 사이의 슬픔과 두 사람의 기쁨이 이 두 편의 영화에 아름답게 고여있다. 알렉산더 폐인 감독의 영화 '바튼 아카데미'는 외로운 사람이 외로운 사람을 향해 걸어가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숨겨진 행운 버튼을 누르는 그 순간을 기어코 목도하는 영화다. 겨울 방학을 맞아 텅 빈 학교에 남겨진 몇 안 되는 사람들, 어딘가로 향할 곳이 없어 함께 있지만 각자일 수밖에 없는 외톨이들의 서툰 관계 맺기가 영화 속에 담겨 있다. '바튼 아카데미'에는 가장 추운 계절의 한복판에 자리한 크리스마스라는 시즌이 주는 반가움과 쓸쓸함이 인물들 사이를 공명한다. 어둡고 하얀 밤에 꺼지지 않는 작은 전구들의 불빛처럼 미약하지만 확실한 온기가 이 영화 안에 머무른다. 영화 속 인물들이 서로를 허락할 수 없다고 확신한 순간에도 마음의 틈은 벌어지고 필사적으로 멀어지려 했던 타인의 곁으로 조금씩 밀려가게 만드는 훈풍이 스스로의 마음 안에서 태어난다. 그렇게 서로의 거리를 좁히면 그제서야 보이는 사소한 것들, 눈빛과 몸짓의 떨림과 주저함과 서투름의 풍경을 '바튼 아카데미'의 인물들은 마침내 확인하게 된다. 가장 어려운 것이 인간 사의의 관계라고 많은 이들이 말한다. 참으로 맞는 말이다. 하지만 어려워서, 뾰족한 해결책이 없어서 결국은 뭉툭한 마음으로 시간을 들이고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것 또한 모두가 알고 있는 진실일 것이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한다. 옷깃은 인간의 가장 연약한 신체 부위인 목 둘레를 감싼 옷의 부분이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너무 추웠을 때 내 옷깃을 여며주고 자신의 목도리까지 둘러줬던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 마음을 잊지 않고 있다면 결코 잃어 버릴 수 없는 것이 인연이 아닐까.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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