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소식-장석남 마당 밖에 잠언 한 구가 나무 그림자처럼 옮겨갑니다 풀이 돋아날 겁니다 아무도 보호하지 않겠으나 풀은 웃고 제 주권을 주장하지 않고 풀은 웃고 문 열어놓고 삽니다 그러나 아직 눈밭이고 여자를 업은 한 남자가 두 사람 무게의 깊은 발자국을 남긴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풀뿌리들이 소곤거리기 시작했으니 곧 발자국에서 흙이 올라올 겁니다 무거웠던 자국에서 가장 먼저 흙이 올라올 겁니다 삽화=배수연 아직 풀이 돋아나기 전이고 지상은 아직 눈밭일 때 풀을 기억하는 것은 봄을 끌고 와 겨울을 보내는 목자들의 오랜 습성, 따스한 경험 아닌가. 여자를 업은 한 남자가 눈밭에 등장하는 장면이 좋고, 그들은 내가 아는 사람 같다. 달갑지 않더라도, '발자국'의 무게와는 말을 많이 하지 마세요. 곧 흙이 올라올 겁니다. 어느 날 어느 시 풀숲에서 짹짹거리며 새가 옮겨 다니면 잠언 한 구가 맞구나 싶을 테고, 겨울은 스위스였구나 하고 알게 되지. 흙이 넓고 멀리 커튼을 치고 있다 풀을 쨘, 하고 보여주면 한 풍경 하는 초원이 있는 거다. 꼭 문 열어놓고 살자. 울음이 꺼지고 웃는 소리가 안에서나 밖에서 들어올 것이다. 아직은 아니지만 당신은 반드시 내 앞에 나타난다. 또다시 꿈에서라도. <시인>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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