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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제주 자연을 닮은 무덤, 그 안에 녹아든 삶
강정효의 사진집 '미여지벵듸'
오은지 기자 ejoh@ihalla.com
입력 : 2024. 04.19. 00:00:00
[한라일보] 표제인 '미여지벵듸'는 "이승과 저승 사이의 시간과 공간으로, 망자가 저승으로 갈 때 거쳐 간다고 여겨지는 곳"을 이르는, 제주의 무속에서 나오는 말이다.

강정효 작가의 설명을 덧붙이면 "제주 사람들은 이승과 저승 사이의 상상 속 시공간(時空間)으로 '미여지벵듸'가 있다고 여겨왔"는데 "제주의 굿 본풀이에 의하면 사람이 죽어서 저승으로 가는 과정에서 모든 미련과 원한, 괴로움을 미여지벵듸의 앙상한 나뭇가지에 걸쳐둔 후에야 나비의 몸이 되어서 훨훨 떠날 수 있다"('작가노트' 중)고 한다.

강정효의 사진집 '미여지벵듸'에 수록된 사진.

 이승에서의 삶의 시간을 다하고 난 뒤 저승으로 가기 전 다다르는 광막한 들판, 그곳은 죽음을 완성하는 공간이자 삶과 죽음이 어우러지는 공간이다. 책 '미여지벵듸'(한그루 펴냄)는 그 '미여지벵듸' 너른 들판에 풀처럼, 나무처럼, 바위처럼 놓인 죽은 자들의 집, 무덤을 "경외의 시선"으로 담아낸 강정효 작가의 신작 사진집이다.

강 작는 '작가노트'에서 "제주에서는 삶과 죽음이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실제로 제주에서 무덤은 마을 가까이에 있다"며 "무덤이라 하면 으레 죽음 또는 무서움을 연상하며 터부시하는 경향과는 사뭇 다르다"고 말한다. 그렇게 "제주의 자연을 닮은, 더불어 산 자와 죽은 이가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제주 사람들의 삶", "그 정서를" 담아내고 싶었다고 밝힌다.

크게 봄, 여름, 가을, 겨울, 동자석 등 다섯 부분으로 엮인 책에서 작가가 무덤을 통해 살펴보는 제주인의 생사관과 그에 담긴 제주문화의 가치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사진은 160여 컷이 수록됐다.

출판사는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어둡고 격리된 공간이 아니라 자연의 일부로 존재하는 무덤의 모습은 또 다른 감동을 느끼게 한다"고 소개했다. 3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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