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너울파도가 인상적인 마을이다. 멀리 태평양에서 큰 바람이 일면 그 파장을 읽어 동심원을 그리며 달려온 너울이다. 남풍이 부는 날에 앞바르와 오다리 부근 갯바위에서 수평선에 소실점을 찍으면 너울파도를 타고 범섬이 마치 큰배처럼 출렁거린다. 범섬이 있어 법환리는 오묘한 공간적 유대감이 일어난다. 보름달이라도 휘영청 밝은 날이면 절묘한 바다의 울림을 담아내는 그릇이기도 한 범섬.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46호 '범섬 상록활엽수 및 흑비둘기 번식지'로 지정된 곳이다. 목호들이 최영장군의 군대에 쫓겨서 사생결단을 낼 장소로 범섬을 선택한 것은 절벽이 마치 철옹성처럼 오르기 힘들 것이라 여겼을 법도 하다. 법환포구에 남아있는 '막숙'이라는 지명은 최영의 군대가 천막을 치고 군영을 형성했던 곳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 치열했던 싸움을 법환리는 지명으로 기록해두고 있는 것이다. 목호의 난이라고 하는 역사에 대하여 그 평가는 학자들의 몫이라 치더라도 최영장군이라고 하는 맹장이 여기에서 범섬에 있던 목호들과 싸웠던 사실은 이 마을을 더욱 유서 깊게 한다. 세추맥이, 빽빽동산, 써을, 고래왓, 두루머니물, 너벅빌레, 망다리, 칭계왓, 도리술, 왕개니안통, 공물깍먼여 등 제주어 감각을 총동원 하지 아니하고선 뉘앙스도 전달되지 않을 마을 지명들을 소리 내어 부르노라면 이 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온 사람들의 참 맛을 맞이하게 된다. 지금도 큰 마을이지만 과거에도 다른 마을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구가 많았다. 불과 110년 전에 인구 상황을 조사한 삼군호구가간총책이라는 자료를 보면 317호에 1332명이 살았다고 한다. 대촌이라고 해야 옳다. 마을 면적으로 볼 때, 밀집된 형태의 취락이 형성되었던 곳. 그만큼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자연적, 사회적 여건이 풍성했다는 것이다. 농경과 어로가 균형 잡힌 생활공간이었음을 마을의 위치와 지형들을 살피다보면 이해하게 된다. 그러한 경제적 기반 위에서 자녀들이 학문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었기에 선비마을의 면모와 조상 대대로 인재가 많이 배출되는 마을로 명성이 높았다. 맹모삼천지교라는 고사를 인용하지 아니하고서라도 마을 분위기가 주는 모범적 사례들을 본받고자 하는 후학들의 자세는 지금도 면면히 흐르고 있는 유전적 자산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마을 포구와 해안도로를 걸으며 듣는 파도소리는 조간대가 얼마나 풍성하게 발달되어 있는 지 가늠하게 한다. 마치 바다밭을 연상할 정도로 해산물들이 숨어 있을 갯바위와 굵은 바닷돌들. 기근이 들어도 최소한 굶어 죽지 않을 해답이 저 조간대에 있었으리니. 바닷속 또한 풍요의 극치라고 한다. 현창호 마을회장 마을의 외형은 도농복합지역의 면모로 급속하게 바뀌는 분위기다. 지속적인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법환마을이 보유한 역사성과 자긍심들이 오롯이 후세들에게 전승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져야 한다. 귀한 것은 귀한 값을 하니까. <시각예술가> 점방의 추억 <수채화 79cm×35cm> 파격적인 구도를 지닌 주제 중심의 그림을 통하여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잊혀져가는 어떤 소중한 과거에 대한 그리움. 수채화가 줄 수 있는 매력이 있다면 낡은 것도 상큼하게 와닿게 할 수 있다는 사실. 해질 무렵 범섬의 향기 <수채화 79cm×35cm> 장마철에 느껴지는 회색 구름의 은은함을 공간적 배경으로 범섬을 그렸다. 절벽이 주는 독특함은 광선과의 만남에 있어서 하나의 환상이다.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남는 저 생명력에 대한 경외심을 그리는 것은 이 섬에서 숱한 고난과 함께 살아온 선조들의 정신을 그리는 것이라 과도한 해석을 낳게 하였으니, 그리면서 치미는 망상을 부질없다 할 것인가? 범섬은 부모와 자식 관계다. 서쪽에 자녀를 두고 항시 걱정을 놓지 못하는 부모. 어여쁘기도 하거니와 보듬어주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는 형상이다. 파도가 늘 짠물을 주입하는 하단이 검정색에 가까운 짙음으로 바다에 떠 있는 배를 연상시킨다. 사방이 절벽으로 이뤄진 독특한 섬을 그리면서 숱한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어두운 밤에 고깃배들에 서치라이트를 달아 벽에 비추는 축제 이벤트를 하면 참으로 환타지를 폭발시키는 섬이 되겠다는 환쟁이의 상상이 그것. ■기사제보 ▷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다음채널홈 바로가기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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