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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풀리면 마음도 삶도 풀립니다" [당신삶]
[당신의 삶이 이야기입니다] (23)'힐링춤' 추는 현경희 씨
건강 이상 신호에 교직 내려와 자연으로
자연환경해설사 등 '공부'하며 건강 회복
"재밌어야 치유" 힐링춤으로 메시지 전해
김지은 기자 jieun@ihalla.com
입력 : 2024. 07.03. 15:02:07

좋아하는 것으로 몸을 움직이며 건강을 되찾은 현경희 씨는 "몸과 마음이 힘들어도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면 에너지가 생긴다"고 말한다. 사진=신비비안나 기자

"지금 이 순간, 해 보고 싶은 걸 다 하세요. 내 몸의 느낌, 감각, 정서를 느끼고 수확하세요." 지난달 16일 푸름이 내려앉은 사려니숲 무대에 선 현경희(62, 제주시 화북) 씨가 말했다. 그와 함께 둥글게 모인 사람들이 솔바람에 흔들리는 나무가 된 듯 몸에 힘을 빼고 가벼이 움직였다. 해마다 '사려니숲 에코힐링 체험행사'가 열릴 때면 경희 씨는 '생태춤 명상'을 선보이고 있다. 자연 안에서 명상처럼 마주하는 춤이 치유의 메시지를 전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좋아하는 것의 '힘'

어릴 때부터 유독 자연이 좋았다. 서귀포에서 나고 자란 경희 씨에게 한라산은 마음속 친구이자 엄마 같았다. 중학교 내내 오가던 등굣길에 펼쳐진 한라산을 바라보며 "항상 대화를 나눴다"는 그는 대학에 들어가 산악부 대장까지 할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경희 씨는 "자연과 가까이에 있을 때 정말 행복했다"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니 암벽 등반의 힘듦을 극복해 가는 과정도 굉장히 매력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좋아하던 일도 한동안 내려놓고 살았다. 지리교사로 교직생활을 하며 결혼, 출산, 육아 등의 시기를 지나오면서 "자유로이 산에 가는 것은 거의 포기하고 살았다"고 그가 말했다. 하지만 이마저 즐길 수 있었던 것은 강요가 아닌 "내가 선택한 자유"였기 때문이다. "교사라는 직업을 굉장히 사랑했다"는 경희 씨에겐 결혼 역시 자신의 선택이었기에 '포기'한 것보다 삶 안에서 '새로 얻은 것'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멈출 수밖에 없는 순간이 찾아왔다. 정년퇴임까지 10년쯤 남겨둔 때에 건강에 이상 신호가 감지됐다. 몸의 기능이 떨어지면서 "엄청난 각오를 해야 학교에 갈 수 있는 날"이 이어졌다. 교직생활을 딱 30년 채운 2015년, '퇴직'이라는 새로운 결심을 해야 했다.

"이젠 좀 쉬여야겠다 싶었어요. 퇴직을 하고 쉬면서 조금씩 걷고 서서히 몸을 회복해 가는 과정을 거쳤죠. 그러다 '자연환경해설사' 공부를 시작했어요. 그때만 해도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였지만 제가 좋아하는 공부를 하니 오히려 건강이 좋아지는 걸 느꼈어요. 좋아한다는 것의 힘은 그렇게 강한 것 같아요."



|'힐링춤'이 준 자유와 행복

다시 자연을 '공부'하기 시작한 경희 씨는 숲해설가로도 활동했다. 그 무렵인 2018년 '힐링커뮤니티댄스', 이른바 '힐링춤'을 만나게 됐다. 그 이름 속 단어처럼 공동체와 치유에 기반을 둔 힐링춤은 그에게 자유와 행복을 안겨줬다. "몸이 풀리면 마음이 풀리고, 마음이 풀리면 삶이 풀린다"는 경희 씨의 말은 그의 경험담이기도 하다.

"힐링춤은 각각의 개인을 존중하며 공동체가 함께 가는, 춤의 한 장르예요. 춤은 몸을 풀어주는 작업이면서 마음까지 풀리게 하죠. 몸으로 동그라미를 그리는 '원 리추얼'(one ritual)은 온몸에 마음까지 이완해 주는 좋은 동작인데, 꾸준히 하다 보니 긴장되는 순간에도 마음이 편안한 것처럼 태도가 달라지더라고요. 춤을 출 때 느꼈던 여러 감정들이 삶까지 연결되면서 부드럽게 풀리도록 도와주는 걸 느꼈어요. 그렇다면 나만 이렇게 행복하고 좋을 게 아니라 주변과 나누면 좋겠다는 마음을 갖게 됐죠."

그가 평생교육 강좌 등을 통해 힐링춤을 알린 것도 누구나 쉽고 재밌게 할 수 있는 '춤'이어서다. 일반적으로 춤이라고 하면 전문 영역같이 느껴지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고 경희 씨는 말한다. 하루에 한 번 털기처럼 동작이 단순해 나이가 들어서도 할 수 있다는 거다. 경희 씨는 "아무리 좋아도 재미가 있지 않으면 그걸로 끝"이라며 "춤을 추다 보면 웃음꽃이 피고 재밌다는 반응들이 많다. 이렇게 재미있을 때 치유가 일어난다"고 했다.

지난달 16일 사려니숲에서 춤 동작을 선보이는 현경희 씨. 그는 '힐링커뮤니티댄스'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다. 사진=신비비안나 기자

|"힘들어도 움직여 보세요"

그에게 춤은 큰 틀에서 하나의 '움직임'이다. 꼭 춤이 아니어도 천천히 걷는 것처럼 일단 몸을 움직이는 것에 큰 힘이 있다고 경희 씨는 강조한다. 지난해 교통사고로 의식을 잃을 정도로 심한 부상을 입었지만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던 것도 열심히 걸은 덕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에 3주는 걷지 못하고 병원에 누워 있었는데 퇴원할 때 의사 선생님이 말하더라고요. 회복을 위해 필요한 첫 번째는 걷는 거라고요. 두 번째는 맛있게 잘 먹는 것, 세 번째는 행복하게 살라는 거였어요. 결국엔 마음이 몸에 영향을 준다는 말이었는데, 정형외과 선생님이 그렇게 말하니 재밌고 신기하기도 했죠. 그때부터 그 세 가지를 정말 잘했어요. 제가 걸을 수 있는 속도로 천천히 걸었고, 걷고 나니 식욕이 좋아서 잘 먹었고, 항상 감사하고 행복해했죠. 살아난 것만 해도 행복한데 걸을 수 있다는 게 행복 그 자체였어요. 제가 다른 사람에 비해 회복이 굉장히 빠르다고 했는데, 이런 마음이 회복에 큰 도움을 준 것 같아요."

올해 사려니숲 에코힐링 체험행사에서 '생태춤 명상' 프로그램을 진행 중인 경희 씨. 사진=신비비안나 기자

몸으로 체험한 경험은 강한 믿음이 됐다. "몸과 마음이 힘들어도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면 에너지가 생긴다"는 것이다. 그가 사고 이후 힘겹게 2000걸음을 걷던 날을 지나 하루에 1만보 이상을 거뜬히 걷게 된 것처럼 말이다. 경희 씨는 "몸이 아프든 마음이 아프든 일단 움직여 보라"면서 "어떻게든 움직이면 된다. 그것만으로 힘과 치유를 가져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좋아하는 것으로 몸을 움직이며 건강을 되찾은 경희 씨의 앞날에도 '자연'과 '춤'이 놓인다. 이를 통해 누군가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꺼내며 그가 여름 숲처럼 싱그럽게 웃었다.

"겉으로 보기엔 다 좋아 보여도 몸속, 마음속 어딘가엔 작든 크든 모두가 아픔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아픔을 조금이나마 풀어낼 수 있도록 제가 도움을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죠. 가장 좋은 '베스트'는 오늘 같은 날이에요. 사려니숲에서 춤을 추면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춤이 주는, 숲이 주는 힐링을 나눌 수 있으니까요."

◇당신의 삶이 이야기입니다(당신삶)

수많은 삶은 오늘도 흐릅니다. 특별한 것 없어도 하나하나가 소중한 이야기입니다. 그 이야기가 모여 비로소 '우리'가 됩니다. '당신삶'은 우리 주변의 다양한 삶을 마주하는 인터뷰 코너입니다. 그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분들은 언제든 문을 열어 주세요. (담당자 이메일 jieun@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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