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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노래'로 제주를 기억하게 하고 싶어요" [당신삶]
[당신의 삶이 이야기입니다] (24) 제주를 노래하는 강석용 씨
기타 연주하던 전문 음악인서 택시기사로
생업 위해 접었던 꿈 꺼내 제주 노래 지어
'제주를 노래하다' 프로젝트로 제주 알리기
"음악인 맘 편히 설 수 있는 무대 있었으면"
김지은 기자 jieun@ihalla.com
입력 : 2024. 07.31. 14:09:46

제주를 노래하는 강석용씨. 사진=신비비안나

[한라일보] 노을이 내려앉은 바다가 붉게 빛나던 지난 16일 제주시 삼양해수욕장에서 강석용(66) 씨가 기타를 메고 마이크 앞에 섰다. 백사장에 맞닿은 잔디밭을 무대 삼아 연 '반짝 공연'이었다. 하모니카를 부는 박순 씨와 쌓아올린 흥겨운 리듬 위에 얹어진 건, 다름 아닌 '제주'였다. 바닷바람에 실린 노래 'I Love jeju'(아이 러브 제주)를 타고 한라산, 곶자왈이 춤을 췄다. 석용 씨가 곡을 쓰고 제주를 담은 노래다.

|놓을 수 없던 음악의 꿈

제주가 고향인 부모 아래서 부산에서 나고 자랐다. "음악 하던 형들이 멋있게 보여 16살 때부터 기타를 치기 시작했다"는 석용 씨는 열여덟 이른 나이에 음악을 '직업'으로 삼았다.

1970년대, 밤의 문화를 상징하던 고고클럽은 그의 일터이자 무대였다. 오랜 사랑을 받은 가수 고(故) 현철과의 추억이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현철 씨가 부산 출신입니다. 부산에서 '현철과 벌떼들'로 활동하던 무명 시절에 몇 개월을 함께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밴드가 생음악을 연주하던) 고고클럽이 많았습니다. 유명한 가수들이 노래를 하러 오면 반주를 해 주기도 했습니다."

강석용 씨는 제주의 노래로 제주를 기억하게 하고 싶다고 했다. 사진=신비비안나

하지만 그 좋아하던 기타도 잠시 내려놔야 했다. 노래방의 등장으로 연주할 곳이 점점 사라졌고, 석용 씨가 설 자리도 좁아졌다. 먹고사는 일 앞에선 꿈만 좇을 수는 없었다. 30년 전인 1995년쯤, 제주에 내려와 기타 대신 택시 운전대를 잡았다.

음악의 꿈을 완전히 잊은 건 아니었다. 관광객을 태우고 택시를 몰면서 음악에 대한 갈증이 다시 커졌다. '왜 제주에는 제주만의 음악이 많지 않을까.' 이런 생각은 음악인으로서 '할 일'을 고민하게 했다.

"당시만 해도 '제주도 푸른밤', '감수광' 정도였습니다. 관광 섬인 제주에 꼭 필요한 게 음악인데, 제주를 대표하는 음악이 거의 없다는 게 말이 안 됐지요. 보는 관광, 먹는 관광보다 더 중요한 게 '듣는 관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장소에서 기억에 남는 음악을 들으면 평생 잊을 수 없으니까요. 그 음악을 다시 듣는 순간, 장소와 추억이 살아나고 그곳에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게 음악의 힘이지요."



|제주를 담아 노래를 짓다

석용 씨는 다시 기타를 잡았다. 2009년, 10여 년간 했던 택시 일을 그만두고 실용음악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단순히 기타를 배워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더 늦지 않게 '제주의 노래'를 만들고 싶었다.

그때부터였다. 직접 곡을 짓고, 제주를 이야기하는 노랫말을 붙었다. 그가 삼양해수욕장을 걸으며 느낀 아름다움을 표현한 '제주 바닷가에서의 하루'를 비롯해 '숲속여행', '바다가 노래하는 섭지코지' 등 20곡이 그렇게 만들어졌다.

도전은 또 다른 도전을 불렀다. 기타만 연주하던 데에서 직접 노래까지 부르기 시작했다. 만든 곡을 대신 불러줄 사람을 찾기 어렵다고 가만히 시간만 보낼 수는 없었다. 석용 씨는 "'이대로 세월만 가다가는 이것도 저것도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되든 안 되든 해 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자기 자신을 "음치"라고 할 정도로 노래에는 자신이 없었지만 부단히 연습했다. 자작곡 6~7곡을 부르며 무대에 설 정도가 됐다. 다음 순서는 무대를 구하는 일이었다.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을 찾아 자신의 계획을 꺼내 놓고 기회를 얻었다.

지난 16일 제주시 삼양해수욕장에서 버스킹을 하고 있는 강석용 씨. 사진=신비비안나

그렇게 시작한 게 '제주를 노래하다' 프로젝트다. 석용 씨는 지난 5월부터 매달 둘째, 넷째 주 토요일에 민속자연사박물관에서 버스킹(거리 공연)을 하며 제주를 알리고 있다. 목표는 분명하다. 그가 택시를 몰고 제주를 누빌 때부터 품었던 바람이기도 하다.

"모두가 좋아하는 게 음악입니다. 음악으로는 감동을 줄 수도, 울고 웃게 할 수도 있습니다. 제주를 정말 사랑하게 할 수 있는 것도 음악입니다. 제주를 대표하는 노래가 울려 퍼진다면 우리 세대, 다음 세대에도 제주를 기억하게 할 수 있을 겁니다. 저 역시 제 노래를 통해 그 일을 하고 싶습니다."

노래로 더 많은 이들을 만나고 싶은 만큼 아쉬움도 있다. 제주에도 버스킹 문화가 활성화되고 있지만, 정작 음악인이 맘 편히 설 수 있는 무대가 부족해서다. 뜻을 같이 하는 음악인을 한 데 모으고 싶다는 마음도 크다.

"요즘엔 조금만 소리가 커도 민원이 들어옵니다. 그러다 보니 버스킹을 하고 싶어도 제대로 하지 못하기도 하지요. 관광객들이 모이는 곳에 제주의 색채를 전하면서도 라이브 공연을 할 수 있는 장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전 세계인들이 제주를 찾았을 때도 의미 있는 공간이 될 겁니다." 취재·글=김지은 기자, 영상 촬영·편집=신비비안나 기자



◇당신의 삶이 이야기입니다(당신삶)


수많은 삶은 오늘도 흐릅니다. 특별한 것 없어도 하나하나가 소중한 이야기입니다. 그 이야기가 모여 비로소 '우리'가 됩니다. '당신삶'은 우리 주변의 다양한 삶을 마주하는 인터뷰 코너입니다. 그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분들은 언제든 문을 열어 주세요. (담당자 이메일 jieun@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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