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원래 옛이름은 과납(科納)이었다. 700년 오랜 역사를 가진 마을. 과오름 남쪽에 위치해 평온함이 가득하다. 일제강점기 명칭이 납읍리로 바뀌었다고 한다. 제주에서 邑(고을 읍)자가 들어가는 마을은 성읍리와 납읍리뿐이다. 마을 이름이 바뀌던 당시 어르신들이 애월의 중심이라는 뜻에서 고을 읍자를 고집했다고 한다. 그러한 의식은 조선 중기 이후, 중앙무대에서 20여 명의 과거급제자가 속출함에 따라 문촌으로 명성을 떨쳤던 영광과 무관하지 않다. 많은 훈장들과 서당이 있어서 사학의 중심지였던 과납. 학문을 연마해 벼슬길에 나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였던 납읍리는 그 후손들 또한 공직자들이 유난히 많다. 출향인사들 중에 세상에 공헌하는 분들 또한 수두룩하니 마을 공동체가 보유한 독특한 정신적 자산이 얼마나 후손들에게 큰 자양분이 되고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해야 할 것이다. 김보성 이장 선비마을이라는 명예를 보유하게 된 것은 교육열이라고 하는 정신적 자산에서 비롯하였으리라. 그러한 자긍심에 위기가 닥친 것, 농촌 인구 감소로 인해 납읍초등학교가 분교로 전락하게 될 수 있다는 현실에 봉착하게 되면서였다. 1998년 마을 주민들을 비롯한 출향인사들이 선비마을이라는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내놓은 해법은 놀라웠다. 마을 성금을 모아서 연립주택을 지어 초등학교 어린이가 있는 가정에 무상으로 입주를 시켜주겠다는 것. 단 한 푼의 행정적 지원도 없이 오직 마을 주민들이 일심단결해 실천으로 옮긴 결과 납읍초등학교는 지금까지 건재하다. '문화적 자긍심은 어떤 경제적, 사회적 요인도 움직이게 한다'는 것을 입증한 고귀한 사례라고 해야 할 것이다. 양반고을이라고 하는 주민 자긍심은 납읍리를 관통하는 문화이며, 하나의 가치 기준이다. 천민자본주의에 찌든 사람들이 있다면 납읍리 주민들의 정신세계 속에 젖어들어볼 필요가 있다. 남에게 베푸는 것을 인생의 품격으로 여기는 사람들의 공동체이기에 이웃 간에 정이 넘치고 정신적 풍요로움이 가득하다. 납읍리 주민들의 깊이 있는 결속력은 멀리 보고 뚜벅뚜벅 실천해가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1917년부터 시작해 23년에 걸친 주민들의 피나는 노력의 결과로 사장물이라고 하는 둥근 형태의 식수천을 만들어낸 토목의 역사. 경거망동하지 않고 진득하게 꿈을 실현해가는 전통을 여기서 발견하게 된다. 마을공동체의 일이 곧 자신의 일이라 여기던 시대가 아직도 납읍리에서는 끝나지 않은 진행형이다. 김보성 이장에게 납읍리가 보유한 가장 큰 자긍심을 묻자 간명하게 대답했다. "공경심입니다." 마을 공동체를 이끌어주는 힘이라는 것이다. 어른과 선배에 대한 공경문화가 결국은 후배들에 대한 존중으로 선순환하면서 동력을 얻는 정서적 시스템. 출향 인사들 중에 인구 대비 인물이 많이 배출되는 것은 그러한 풍토 속에서 성장해 체질화된 마인드로 사회생활과 자신이 속한 조직에서 활동하게 되므로 모두가 인정하고 함께 일하고 싶은 존재가 된다는 설명이다. 후세를 위해 물질적 재산을 물려주기에 앞서 정신적 자산을 물려주려 했던 사람들, 마을 공동체라고 하는 부가가치가 순기능을 발휘하게 될 경우에 어떤 위력이 발생되는지 보여주는 마을이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에 찌든 현대인들에게 납읍리라고 하는 마을 전통은 부러움의 대상이요 배움의 대상인 것이다. '아름다운 유지관리'라고 하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마을이 보유하고 있는 정신적 자산을 후대에 계승하기 위한 숨은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시각예술가> 뙤약볕 눈부신 금산공원 옆길 <수채화 79cm×35cm> 길가에 드리운 그림자가 실재 상황은 더 짙게 깔려 있었지만 부드럽게 처리한 이유는 주제가 오른쪽 나무군락이기에 그렇다. 뜨거운 햇살을 받은 모든 물상이 반사해내는 광선을 포집하는 작업이 이 그림이 추구하는 궁극 목표다. 원근법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화폭의 현실이지만 금산동산의 나무들은 워낙 강렬한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기에 다른 영역들을 압도하고도 남는다. 색채를 통한 표현을 절제하고 형태와 명암의 강도를 중시한 그림이 어떻게 빛을 표현 할 수 있는지 확인. 다른 시간대에 그리면 확연하게 다른 느낌을 줄 것이다. 한라, 그 웅비의 날개 <수채화 79cm×35cm> 납읍리에서 바라보는 한라산이 어떤 의미와 매력을 지니고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에 신바람이 불었다. 또한 안온한 느낌이다. 두 팔 벌려 할아버지 품속으로 달려오는 손자를 안아줄 것 같은 아름다움. 그리는 내내 우리말 '아름다움'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아름답다는 단어를 이렇게 배웠기에 그렇다. <아름(한 아름, 두 아름 팔은 벌려 안아주는) + 답다= 안고 싶다. 안음직 하다> 웅원한 내리사랑이 느껴지는 저 품속으로 초록 생동감이 줄달음쳐 간다. 과거시험 공부에 여념이 없던 선비들이 이 지점에 올라와 한라산을 바라보며 웅비의 꿈을 키웠으리라는 상상을 그렸다는 보람으로. ■기사제보 ▷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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