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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록담
[진선희의 백록담] "바당 속이 심상치 않다"는 소리에 귀 기울인다면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입력 : 2024. 08.12. 00:00:00
[한라일보]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테왁 망사리를 든 해녀들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이자 외국인 관광객들이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얼마 전 찾은 성산일출봉 아래 우뭇개. 이날 오후 2시부터 펼쳐진 '해녀 물질 공연'을 보러 수십 명이 모여들었다. 해안의 판판한 바위를 무대로 삼은 성산리어촌계 해녀들은 찌는 듯한 날씨에 평소의 고무옷 대신 천 소재 물소중이를 입고 짤막하게 공연을 벌였다. 폭염 속 공연을 맡은 4명의 해녀들은 물질 시연 순서를 기다린 듯 바닷물에 몸을 담그며 "어이구, 시원하다"고 했다. 우뭇개 해녀의 집에서 관광객에게 해산물을 파는 중에 조를 짜서 물질 공연을 이어가고 있는 그들이다. 하지만 '일출봉 장사' 초창기 100명이던 해녀 수는 이제 절반으로, 공연 횟수는 하루 한 번으로 줄었다.

성산포만 그런 게 아니다. 1970년대 1만4000명이 넘었던 제주해녀는 지난해 2800여 명으로 감소했고 현직 해녀 10명 중 6명이 70세 이상(60.3%)이다. 지난 4월 제주도가 해녀의 명맥을 잇고 해녀어업의 지속성을 확보하겠다며 신규 해녀 집중 육성을 골자로 5대 전략 26개 사업 계획을 발표한 배경이 거기에 있다.

2016년 '제주해녀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며 한 해 수십억 규모의 지원 등 해녀 정책이 확대되고 있으나 변죽을 울리는 식이어선 안 된다. 새 해녀들이 가입해도 바다에서 잡을 것이 없어서다.

제주도에서 지난봄 내놓은 제주해녀 생애사 조사 보고서('좀녀 아니 댕기믄 바당 엇어져 갈 거')엔 제주 전체 103개 어촌계별 1명씩 80세 전후 고령 해녀를 중심으로 103명의 구술이 정리됐다. 500여 쪽 분량의 자료집을 넘기다 보면 "바당 속이 심상치 않다", "작년까지는 물건이 있었는데 올해는 소라도 없고 풀도 없다"는 말들이 잇따른다. 꼭 10년 전의 제주해녀 생애사 조사 보고서에도 "이 바다에서 언제까지 물질을 해서 먹고살 수 있을지 걱정"이라는 해녀들이 일부 있었는데 이번에는 구술자 대부분이 그런 심정을 털어놨다.

수십 년 경력을 지닌 제주의 동서남북 해녀들이 지목한 바다 오염의 원인은 양식장, 방파제 공사, 발전소, 골프장, 해군기지, 하수처리장, 영어교육도시 조성, 밭농사에 쓰는 농약 등 조금씩 달랐다. 설령 그게 직접 영향을 끼치지 않았더라도 전통 방식을 따라 지금도 맨몸으로 짠물에 뛰어들며 사는 해녀들은 '기후 위기'라는 거대 담론 이전에 바다가 처한 상황을 가장 먼저 목격해 왔다. 동부 지역의 한 해녀는 "축항 확장한다고 매립해서 바다가 죽어 버렸다"며 "옛날에 700만 원씩 돈을 갈라주니 아무것도 모르고 도장 찍어줬는데, 우리 해녀가 바다 팔아먹은 것 같아 후회가 많이 된다"고 했다.

오늘날 바다 생태계에 대한 진단과 근본 처방 없이 벌이는 정책들이 해녀의 내일을 꿈꾸게 할 수 있을까. 제주해녀 생애사 조사가 보고서로만 그치지 않길 바라는 이유다. "이런 거 자꾸 조사만 해가면 뭐가 좋아지나?" 해녀들에게 다시 이런 소리는 듣지 말아야 하지 않겠나. <진선희 제2사회부국장 겸 서귀포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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