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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범의 월요논단] 향료 색소 첨가 막걸리와 포획된 전통주의 앞날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입력 : 2024. 08.12. 06:30:00
[한라일보] 왜 국민 대다수가 원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결정되지 않을까. 소수 특정 이익집단의 이익을 옹호하는 법안이 입안될까. 이런 의문이 들 때가 종종 있다. 이럴 때 1982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조지 스티글러(George Stigler)의 포획이론은 유용한 해답을 제공한다.

포획이론(capture theory)은 한 마디로 정부가 특정 이익집단에 사로잡히는 것을 말한다. 정부가 그릇된 정책을 내놓는 것은 관료의 무능 때문만은 아니다. 이익집단에 포획된 정부에 의해 이익집단이 혜택을 볼 수 있도록 법과 규정을 바꾸기 때문이다. 선의로 마련한 정책들도 결과적으로는 공익을 해칠 위험성이 있음을 경고한다.

지난 7월 25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24년 세법 개정안'만 해도 그렇다. 세법 개정안 중 주류 관련 내용은 전통주 세율 경감 대상과 한도를 확대하고, 술의 저장 및 이송 과정에서 발생하는 손실분, 즉 실감량 한도도 올려준다. 여기까지는 영세 전통주 양조장의 주세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취지다.

문제는 막걸리에 향료와 색소 첨가를 허용한다는 독소조항이다. 이 조항은 소규모 양조장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현행 주세법은 막걸리에 향과 색소를 넣으면 막걸리가 아니라 기타주류로 분류한다. 세금도 막걸리보다 8배 비싸고, 막걸리 명칭도 상표에 쓸 수 없다. 2012년 법원도 "막걸리는 전통주로서 되도록 원형대로 유지·보존할 공익상의 필요가 있다"고 판시한 바 있다.

그럼에도 대량생산, 대량유통 하는 대형 막걸리 양조공장과 관련 협회에서는 오래전부터 막걸리 시장 진입을 위해 향료와 색소를 넣기 위한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 왔다. 8월 말 세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면 그럴듯한 향과 맛을 내는 짝퉁 막걸리들이 시장으로 쏟아져 나올 것이다.

전통주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소비자 혼선은 물론 막걸리가 값싼 술로 치부될까 우려된다. 뒷감당을 마을기업 만덕양조와 같이 지역을 기반으로, 지역 농산물을 재료로 사용하는 소규모 양조장들 몫으로 떠넘기는 것은 무책임하다.

전국의 일부 소규모 양조장들은 힘을 합쳐 '막걸리 향료 및 색소 사용 허가 개정안 폐지 국회 청원'을 준비하고 있다. "전통주의 전통성, 다양성, 차별성이 훼손돼 전통주 시장이 붕괴될 우려가 높다"고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2021년 '막걸리 빚기'가 국가지정 무형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도 추진 중이다. 우리나라 대표적 전통주인 막걸리의 전통과 정체성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하면서 전통주 산업 활성화와 세계화는 헛구호에 불과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위스키, 와인, 맥주, 사케는 국가 차원에서 술에 향료와 색소 사용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제주시 원도심, 건입동 김만덕 객주에서만 맛볼 수 있는 제주특산주 '만덕7' 공식 출시 후 한 달여밖에 지나지 않았다. 정부의 재고를 촉구한다. <김명범 행정학박사·제주공공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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