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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실의 하루를 시작하며] 말복 소회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입력 : 2024. 08.13. 23:30:00
[한라일보] 오늘은 삼복의 막바지인 말복이다. 삼복은 양력 절기와 천간(天干)이 함께 만드는 잡절이다. 하지 지나서 세 번째와 네 번째 경일(庚日)이 각각 초복과 중복이며, 입추 지나서 첫 경일이 말복이다. 복날이 경(庚)과 관련된 연유를 알아보았다. '경'은 오행 중 양기를 띤 '금(金)'으로 '화(火)'와 상극이다. 가을의 기운을 지닌 '금'이 여름의 불기운을 이기지 못해 굴복(屈伏)하는 형국이라고 한다. 그러니 이때에는 폭염이 기승을 부릴 수밖에 없겠다. 하지, 소서, 대서와 입추는 차례대로 15일 내외의 간격을 두고 온다. 초복과 중복은 열흘의 차이를 두고 보통 소서와 대서를 타고 넘는 혹서기에 든다.

말복은 중복이 지나고 열흘이나 스무날 만에 오게 된다. 가을이 드는 입추를 기준으로 삼다 보니 그렇다. 그래서 초복부터 말복까지의 무더위 기간은 짧으면 20일, 길면 30일이 된다. 올해는 초복이 7월 15일로, 복더위가 오늘까지 한 달 동안 이어진 셈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러한 불볕더위에 몸을 낮춰(伏) 자연에 순응하고, 소진되는 체력을 보강하면서 여름을 났다. 지난한 시기를 유연하게 받아들여서 활력 회복과 심기일전의 기회로 삼았던 예다. 해마다 갖는 느낌이지만, 올해는 유독 비도 많고 가뭄과 더위도 더 심한 것 같다.

제주에도 무더위를 이겨내자는 날이 있(었)다. 소위 '유월스무날'이라고도 하는, '닭 잡아먹는 날'이다. 우리 조상들은 대부분 나이를 나타내는 헤치(띠)와 관혼상제의 택일 같은 것은 천간과 음력을 기준으로 삼았고, 농사의 절기는 양력을 준용했다. 그래서 '이날'은 양력 절기와 삼복 날을 참고해 음력으로 계산한 것 같다. 김봉옥 선생은 '제주통사'에서 예전의 제주를 홍수(水災), 가뭄(旱災), 태풍(風災)이 잦은 삼재(三災)의 섬이라고 했다. 먹고살기도 힘들고 농사일로 바쁘기도 했고 마음과 몸이 고단 했겠다. 고된 만큼 '성·아시, 삼춘·조케'하는 이웃들이 함께 심신을 보양하는 날은 필요했을 것이다.

이런 체력 보강의 날을 음력 유월 스무날로 잡은 데서, 제주 조상들이 영민했음을 보게 된다. 육지(본토)에서처럼 세 번 치르기는 어려운 형편이라 하루로 정하면서 매우 신중했을 것이다. 이날은 뒤에 윤달이 들 때가 아니면 삼복 기간에 온다. 올해는 이날이 중복이었다. 또, 이 무렵에 농촌은 콩 갈기를 마치고 조밭에 두불검질메기(두벌김)도 끝내서 시간 여유가 조금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돈은 마련하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닭은 연초에 병아리로 사 오거나 직접 부화시켜 울안 마당과 텃밭에 풀어놓아 키웠다. 그들은 스스로 모이를 구하고 벌레도 잡아먹으면서 이때쯤 큰 닭으로 자라 있었다. 복더위와 농사, 그리고 닭의 성장 시기를 살핀 타이밍이 절묘하다.

복더위보다 더 답답한 세태와 정국을 보면서, 어려운 환경을 견뎌낸 선인들의 지혜로웠던 삶이 많이 생각나는 날이다. <이종실 오라동자연문화유산보전회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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