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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택의 한라칼럼] 소암·서귀소옹(西歸素翁)을 위한 특별한 유묵·탁본전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입력 : 2024. 09.10. 01:00:00
[한라일보] 최근 답사 길에 들른 가시리 맛집에서 '此家是道場(이곳이 곧 도장이다)'라는 액자 글을 만났다. 1980년대 가시리를 찾은 소암 현중화 선생께서 마을풍경에 취하고 음식 맛에 취해 주인에게 써준 휘호란다. 이후 즐겨 그곳을 찾은 선생은 '나는 귀한 사람'이라는 한글 휘호도 선물했단다. 한자를 즐겨 쓰던 선생께서 한글 휘호를 쓴 것은, 인간미와 자연미에 취한 본성의 발로인 듯싶다.

흔히 인간 본성에 대해 맹자의 성선설, 순자의 성악설 외에 노자의 성소설(性素設)도 회자된다. 선생은 노자의 도덕경에 심취해 스스로를 소암(素菴)이라, 70세에는 서귀소옹이라 칭했단다. 서귀소옹은 서귀포에 사는 소박한 노인이라는 뜻으로, 자신을 낮춰 표현하고자 함일 게다. 1907년 법환동에서 태어난 선생은 1923년 제주농림학교 재학 중 자퇴해 일본으로 가서는, 서예의 길을 줄곧 걸었단다. 일본에서 쌓은 화려한 경력과 명성을 뒤로하고 1955년 귀국한 선생은, 학교에서 서도를 가르치기도, 1972년에는 소묵회를 창립해 후학들을 지도하기도 했다. 국내는 물론 일본, 대만 등지의 작품전 등에서 '붓이 노래하고 먹이 종이 위에 춤추면서도 어색함이 없다'는 전문가의 평판을 받았던 선생은, 분명 시대를 뛰어넘은 예술계의 거목이시다. 그러기에 정부는 대한민국 보관문화훈장을 추서했고, 제주도는 선생 탄생 100주년을 맞아 '소암 현중화 기념관'을 서귀포에 건립했음이다.

선생의 서실 별칭인 조범산방(眺帆山房)은 바다 위롤 오가는 배들이 보이는 서재 풍경일 테다. 어느 해던가, 선생은 산방에 날아든 여리고 가냘픈 나비 같은 학동을 기거시켜 서법을 익히게 해 마침내 큰 나비 돼 날게 했으니. 다름 아닌 중국으로 건너가 서체 연구로 서법사(書法史) 박사학위를 받기도, 한국서예가협회 명예회장이기도 한, 한국 서단의 거봉인 창봉 박동규가 그다.

그렇게 인연 맺은 제자가 전국도처에 산재한 은사의 진품을 탁본해 선생의 유묵과 함께 '소암 현중화 선생 유묵 탁본전'를 열고 있단다. 제주문예회관의 특별초대전으로 열리는 본 전시회는 선생의 고귀한 문자향과 묵향을 한 곳에서 음미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기도 하다. 전시회 주제어는 수연진여(隨緣眞如)란다. 인연에 순응하며 진리와 조화를 추구하는 마음과 태도가 곧 수연진여일 게다. 그러기에 그곳은 묵향과 문자향에 취하고, 사제지간의 정에 취하는 자리가 되리라.

필자에겐 탐라교육원 근무시절 즐겨 봤던 선생의 다음 글귀가 짙은 문자향으로 남아 있다. 浮生存沒速流電(부질없는 헛된 삶이 빛처럼 빠르기는), 脫却籠頭早着忙(몇 푼 벼슬자리에 허둥대는 모습이란), 鐵壁那邊飜一轉(궁벽한 이곳에서 몸 한 번 돌이키면), 此時方得到家鄕(마침내 고향집으로 가는 것을). 독자께서 혹 전시장을 찾는다면 이 문자향도 맡으시길. <문영택 귤림서원 원장·질토래비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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