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덟번쩨 치른 '2024 제주섬 글로벌 에코투어' 행사에 함께한 참가자들이 하원수로길을 걷고 있다. 오승국 시인 [한라일보] 팔월 하순, 가을을 알리는 입추와 처서가 이미 지났건만 유난히 무더웠던 올 여름은 끝나지 않고 있다. 숲의 나무들처럼 우리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계절의 틈새를 건너가고 있다. 숲의 변화를 감지하노라면 우리도 모른는 새 가을은 이미 와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걸었던 고지천과 궁산천은 아름다움이 넘쳐나는 하천이기도 하지만 우리 선조들은 하천 주변에서 화전을 일구었고 불교를 중흥시킨 '깨달음'의 대지이기도 했다. 또한 무오년 법정사 항일투쟁, 논이 없는 팍팍한 땅에 쌀농사를 꿈꾸며 건설했던 하원수로길, 땀과 눈물로 얼룩진 농업개척 정신이 배어있는 '역사의 길'이기도 했다. 법정사 항일투쟁은 1918년(무오년) 불교계를 중심으로 선도교의 교도들과 지역주민 등 700여 명이 10월 6일과 7일 양일간 중문주재소를 공격, 방화해 전소시킨 사건이다. 이는 1919년 3·1운동 5개월 전에 일어난 최대 규모의 항일투쟁이었다. 법정사 주차장에서 트레킹의 첫발을 내딛으며 숲으로 들어섰다. 산죽(조릿대) 사이로 콘크리트로 구축된 하원수로가 끝없이 이어졌다. 그 길을 걷는다. 수로에 빠지지 않으려고 그네를 타는 곡예사처럼 비틀비틀 걸었다. 1950년대 후반 한국전쟁을 겪은 후 빈곤에 허덕이던 시절, 벼농사를 짓기 위해 영실과 언물을 하원 저수지로 보내려고 수로길을 만들었던 것이다. 수정난초 세발버섯 곰취 고지천을 건너 숲길로 들어섰다. 졸참, 서어, 산딸, 때죽, 단풍, 참꽃, 윤노리 나무 등이 씨앗을 머금은 채 빽빽이 자란다. 또 둥글레·으름난초·비비추 등 초본류, 석송·고비 등의 양치류가 숲 밑에 자라고 있다. 잠시 후 깊은산속 옹달샘처럼 마르지 않은 샘물인 '언물'이 나타났다. 차가운 물이란 뜻인 언물은 영실물과 함께 하원수로의 수원이다. 다시 걷는다. 궁산천을 건너 천변을 걷는다. 궁산천 아름다운 곳에서 도시락 오찬을 했다. 오늘 따라 도시락 공동체가 유별나게 즐거웠다. 머리위에는 분단나무 하트잎이 유난히 초록으로 예쁘고 벌써 열매가 빨갛게 익어간다. 궁산천변을 묵묵히 걸어 내려오다 보니 숲의 나무가 바뀌기 시작한다. 한라산 저지대 나무인 동백과 사스레피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한라산 둘레길인 동백길로 들어섰다. 일제강점기 일본군이 만든 하치마키 도로 흔적이 돌길로 남아 있다. 시오름 쪽으로 향해 다시 걷는다. 한국전쟁 시기 한라산에 남아 있는 마지막 무장대를 토벌했던 경찰 100사령부의 시오름 전초 주둔소가 나타났다. 역사의 비극을 다시 생각한다. 오늘 걸었던 천변인 고지천(법쟁이내), 궁산천(왕하리내)은 도순리 궤사름에서 도순천과 합류해 강정바다로 흘러간다. 우리들 인생도 다 다른 별에서 내려와 세상과 만나 인연을 이루다 저 세상으로 간다. 자연의 이치는 이토록 같은 것인가. 오래되고 기묘한 삼나무와 편백나무가 즐비한 치유의숲을 통해 하산한다. 산도록숲, 엄부랑숲, 오고생이숲, 노고록숲 등 제주어 네이밍이 정겹고 계속 이어지는 호근동 추억산책로로 내려와 오늘의 에코투어를 마감했다. <오승국 시인 /제주작가회의 회장> ■기사제보 ▷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이 기사는 한라일보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ihalla.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문의 메일 : webmaster@ihall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