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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觀] 나의 뒤에는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입력 : 2024. 09.30. 04:00:00

영화 '룩백'.

[한라일보] 지금 이 글을 시작하면서도 드는 생각이다. 나와 편집 기자님을 제외하면 과연 누가 이 글을 읽게 될까. 읽어 줄까, 마음에 들까. 벌써 5년 넘게 하는 걱정인 동시에 고민이다. 빈 여백을 채워 나가면서 나는 내가 봤던 영화들을 다시 보려고 문장마다 애를 쓴다. 내가 본 것 안에서 생겨난 마음들로 영화가 남긴 것들을 정성을 다해 옮기려 한다. 쓰다 보면 매번 작은 산을 오르는 기분이다. 마지막 문장은 보이지 않고 헤매는 순간과 주저 앉는 순간이 반복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런 순간에 예상하지 못했던 마음에 드는 아름다운 일치들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렇게 한 문장을, 한 문단을 원고 한 편을 꾹꾹 눌러 담은 공기밥처럼 송고하면 나면 양가적인 감정이 찾아온다. 이번 주도 애쓴 나를 향하는 뿌듯함과 이 원고가 누군가에게 읽히지 못한 채 묻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며 노트북을 덮는다.

[룩백]은 그림에 대한 자신감으로 가득한 후지노와 세상과 단절된 채 그림만이 전부인 쿄모토라는, 만화를 열렬히 사랑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다. 재능과 열정이 충만했던, 그래서 주저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던 후지노는 놀라운 재능을 갖고 있는 은둔 천재 쿄모토의 그림을 보게 되면서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깊은 절망감에 빠진다. 일순간 초라해 지는 자신을 목도하는 일은 그에게서 자랑이자 사랑이었던 꿈을 내려놓게 만든다. 그런데 어느 날 후지노는 쿄모토의 꿈이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당신 덕분에 힘을 낼 수 있었다고, 당신의 그림을 동경한다고 쿄모토가 고백하는 순간 후지노는 놓았던 자신의 꿈을 다시 번쩍 안아 들어 올릴 수 있게 된다. 쿄모토 역시 문을 열어준 단 한 사람 후지노의 손을 잡고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된다. 꿈을 안고 손을 잡은 이들은 이제 두려움 없는 사랑으로 만화라는 세상을 함께 그려 나가기 시작한다.

[룩백]은 원작 만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1시간 남짓한 분량의 애니메이션이다. 그런데 이 1시간 안에는 놀라울 정도로 깊고 진한 감정들이 담겨져 있어 영화를 보고 나면 충만함으로 가득 차게 되는 신비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살아 오면서 무언가를, 특히 창작이라는 일을 마음에 품었던 이들에게 [룩백]는 깊은 공감을 전해주는 영화다. 우연한 재능이 가져다 주는 성취의 기쁨, 그 기쁨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만드는 눈부신 타인의 존재, 그리고 경쟁과 평가라는 세상의 냉정한 선을 넘게 만드는 함께라는 기적의 순간들이 [룩백]에는 빼곡하다. 제목인 'Look Back'은 '되돌아보다, 회고'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등을 보다'라는 뜻으로도 읽힌다. 영화는 내내 그림에 열중한 이들의 등을 바라본다. 책상 앞에 앉아 만화를 그리는 일에 열중한 각자와 함께의 등이 변화하는 계절 속에도 오도카니 오롯하다. 그 미동 없이 열중한 등들은 떨어져 있지만 어쩐지 맞대진 것처럼 보였다. 서로가 등을 기대고 하는 무언의 응원처럼 말이다. 두 사람이 등이 만들어내는 응원은 객석으로도 금새 전염되었다. 관객들은 [룩백]의 여러 순간 흐느꼈다. 성실하게 일궈낸 성취가 인정 받는 순간에도, 견고했던 우정이 세월 앞에 연약해지는 순간에도, 세월을 관통하는 너와 나의 존재가 조금도 희미해지지 않는 기적 앞에서도 극장 안은 작고 분명한 흐느낌으로 들썩이고 있었다.

우연히 시작되어 평생을 사랑하게 되는 일이 있다는 것은 축복인 동시에 저주이기도 하다. 왜 그걸 그렇게 좋아해? 도대체 그걸 왜 놓지 못하고 살아? 라고 세상은 걱정스레 질문한다. 외롭고 성실한 사랑을 이어가는 이의 세상은 수많은 질문들 앞에 어쩔 수 없이 수축될 수 밖에 없다. 혼자 하는 사랑이 잘못된 것이 아닐까, 내 사랑이 세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 무의미한 일이 아닐까 라는 자조가 섞여 들면 종종 그 사랑을 포기하고 싶어 진다. 그럴 때 기적처럼 같은 사랑을 하는 누군가가 나의 문을 열고 들어와 손을 내밀어 함께 그 사랑을 유예하는 기적을 만든다. 나도 너와 같은 꿈을 꾸고 있어, 우리가 함께 만들 수 있는 세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 그렇게 그 찰나의 접촉은 한껏 수축된 채로 침잠하고 있던 이를 풍선처럼 두둥실 떠오르게 만든다. 자유롭게 날 수 있도록. 5년 째 매주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쓰면서 종종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이 건네 줬던 작은 인사들을 잊지 못한다. 그 짧고 다정한 말들 또한 웅크린 나를 기지개를 펴게 만들었음을, 덕분이라는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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