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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독도 제주 출향해녀 세미나] "독도 출향 해녀 명예 회복·자긍심 고취 필요성 공감"
강다혜 기자 dhkang@ihalla.com
입력 : 2024. 10.04. 04:00:00

지난 2일 오후 2시 한라일보 3층 대회의실에서 '독도 제주 출향 해녀 세미나'가 개최됐다. 왼쪽부터 강승향 제주도 해녀문화유산과장, 김계숙 사단법인 제주해녀협회장, 양홍식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의원, 장영미 귀덕1리 어촌계장, 김하영 해녀문화 교육 강사. 강희만기자

보상·인정 못 받는 해녀 존재
각각 사례 발굴 후 대우해야
교육 자료 대부분 구술 기반
해녀 기록 DB 구축 필요해

[한라일보] 토론에 나선 제주해녀 관계자들 역시 독도 출향 제주해녀의 명예 회복과 자긍심을 높이기 위한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는 발제자의 주장에 공감했다. 이를 위해 독도 출향 해녀 각각에 대한 발굴 작업을 거쳐 합당한 대우를 제공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으며, 제대로된 해녀 교육을 위한 자료 구축도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장영미 귀덕1리 어촌계장은 독도 출향 물질에 대한 기억과 함께 울릉도에서 11년 간 물질을 이어 왔던 경험을 공유했다. 장 해녀는 "독도에서 상주하는 방식은 나보다 둘째 언니와 같은 한 세대 위 선배(1960년~1970년대 초)들 주로 했다"며 "나는 '남발이'라는 배를 타고 (울릉도에서 독도로) 이동한 뒤 배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으면서 이틀가량 독도에서 미역과 감태를 캤다"고 회상했다.

고향 제주를 떠나 울릉도까지 바다 건너 오게 된 사연도 읊었다. 장 해녀는 "어머니 아버지가 워낙 못 살았기 때문에, 쌀 받아 먹을 돈도 없었어. 언니하고 나하고 물질해서 공동으로 벌었지. 제주도에서 그 정도로 힘들었어. 우리(해녀) 돈이 없었으면 우리 가족은 이산가족이 됐을 거야"라고 사연을 설명했다.

그는 "50년 새 제주는 해산물이 10분의 1로 줄었는데, 독도는 50년 전과 비교해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며 "이렇게 잘 보존된 독도 바다를 남의 나라에 뺏기지 않도록 나라가 제대로 대응해 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김계숙 사단법인 제주해녀협회장은 "그 때 그 시절은 모두가 힘들고 어렵고 살았다. 문을 열면 바닷가와 해수욕장이 있어서 헤엄치는 연습을 하고 돌을 주워오는 연습을 하며 살아 왔고, 그러다보니 해녀가 됐다. 18살부터 본격적으로 육지 물질도 다녔다"며 "그런데 김수희 부장의 발제에서 제주 해녀의 인권과 관련한 내용을 들으며, 같은 해녀로서 자존심도 상하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 고인이 됐을지도 모를 해녀들을 위해 이에 대한 명예회복과 인식 개선이 하루빨리 이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또 "제주에서는 해녀들이 웬만큼 보상받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외지에 나가 보니 해녀에 대한 인식이 열악한 곳이 많았다. 고무 해녀복조차 제대로 보조받지 못하고, 잡은 물건을 제 값을 받아 팔지 못하는 해녀들도 있었다"라며 "이번에 결성한 전국해녀협회가 이들 해녀에게 도움을 주고 해녀들이 넉넉하게 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줄 수 있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김하영 해녀교육 강사는 "교육자로서 학생들이 해녀 문화에 관한 질문을 많이 한다. 하지만 전할 수 있는 내용들 대부분이 구술영상 자료를 토대로 한 자료들 뿐이다. 이 부분에 대한 영역이 넓어져야 한다. 즉 데이터베이스(DB)구축이 더 돼야 한다는 것"이라며 "제주해녀에 대한 기록은 문헌을 아무리 찾아도 기록이 저조하다. 아날로그적이긴하지만, 구술 작업이 더 필요하다. 구술 채집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말했다.

김 강사는 또 "제주해녀들이 독도에 가서 어업활동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영토수호를 한 주역이라는 점은 반박할 것도 없다"며 "다만, '숨은 주역'이라는 단어에서 '숨은'이라는 수식어를 제거했으면 한다. 숨은 주역이 아닌, 독도 수호의 주역으로서 제주해녀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가 이뤄져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강승향 제주도 해녀문화유산과장은 "독도 출향 제주 해녀의 업적을 재조명하기 위한 여러가지 사업을 진행하고 있고, 이 사업들로 인해 잘 알려지지 않았던 제주 해녀들의 출향 물질 증언이 재조명받게 됐다"며 "우리 제주 해녀가 독도의 실효적 지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업적을 널리 알리고 또 이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서 독도 물질 기록을 더욱 꼼꼼히 확인하고 기록하는 작업들을 이어나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제주 해녀의 또 여성으로서의 명예 회복 인권 회복, 자긍심을 높이기 위한 노력 역시 기울여 나가겠다"고 말했다.

양홍식 제주도의회 의원 역시 "제주도가 독도 출향 해녀들의 명예 회복을 위한 작업에 더 방점을 두고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며 "비석에 새겨진분들도 계시지만, 다른 곳에서 가신 분들도 계실 것이다. 독도 출향해녀 한 분 한 분을 전부 발굴해서, 이 분들에게 전부 그에 맞는 합당한 대우를 해야 하기 때문에 별도의 예산을 들여 추진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 또 독도 출향 해녀의 역사적 평가를 이제는 좀 더 확대할 필요가 있다"며 "독도의 실효적 지배를 한 것이 독도의용수비대 뿐 아니라 제주해녀가 같이 했다는 점에 대해 국회에서도 한 번 다뤘으면 좋겠다. 중앙정부에서 이에 대해 더 인식하고 추진해야 하려면 지자체 차원의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독도 출향 해녀 의용수비대와 동등 대우…"

제주 독도 출향해녀에 대한 기록 작업과 관련, '독도 영토 수호'를 여성 활동의 차원에서 들여다 본 연구와 업적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이는 독도 수호에 대해 남성들의 군사활동에 치우친 기록과 그 위상 평가가 지배적인 현실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김수희 독도재단 교육연구부장은 '독도 출향 물질의 의미와 고찰' 주제 발제를 통해 이 같이 주장했다.

김 부장은 제주해녀 연구와 전승 작업에 있어 독도 출향 해녀들의 인권과 명예회복, 인식 개선 작업이 밑바탕이 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어 제주 독도 해녀들 역시 독도 수호에 관해 독도의용수비대와 동일한 공로를 국가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지자체 차원이 노력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부장은 우선 "독도를 지킨 사람들, '독도 지킴이'라고 평가 받는 주체와 주역이라는 점에서, 제주 해녀의 공로가 재조명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울릉도 남성들이 독도의용수비대라는 이름으로 1954년부터 56년까지 3년 이상 독도를 지켰다는 유공을 국가로부터 인정받았지만, 제주해녀의 입장에서 보면, 이들의 활동은 명예롭게 독도를 지키면서 군사적 활동을 했다기보다 제주해녀들을 이용해서 어업활동 및 경제활동을 했다는 것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며 "그 증거물들이 협재리 울릉도출어기념비에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20대 초반의 어린 제주 여성이 바다 건너 독도에까지 와서 어로활동을 하고 있다는 기록은 일본의 기사에도 등장하는 내용"이라며 "다만 이 같은 기록에 대해 '제주 여성의 강인함' 또는 '정신력'이라고 평가하거나 기록해서는 안 된다. 인간의 생존권을 무시당하며 육지로 나갈 수밖에 없었던 제국주의와 해방 이후의 어업 정책, 어쩔 수 없이 집을 떠나 자갈밭에서 가마니를 깔고 덮으며 물질을 할 수 밖에 없었던 해녀들의 삶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독도의용수비대들의 경우 그 33인이 모두 기록된 반면, 정작 이 시기 제주해녀들에 대한 기록은 협재리 울릉도출어기념비에 그 공덕을 치하한다는 내용 뿐이다. 이 분들 하나하나의 행적을 찾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독도 출향 물질에 나섰던 해녀들의 업적을 보훈청에 알려서 독도의용수비대와 똑같은 지위를 받을 수 있도록 제주도에서 노력해야 한다"며 "제주해녀를 해양 문화와 기술을 보유한 어업인으로서 새롭게 위상을 마련하고, 이들의 명예 회복과 인식 개선 작업을 우선 마련하지 않으면, '전국해녀협회'라는 이름의 결집체를 만들어도 표류할 수 있다"고 했다.

김 부장은 또 "제주해녀의 물질 기술이 적용됨에 따라 독도 어장의 가치가 확인됐지만 독도의용수비대 측 기록으로 고용된 어업노동자로 연구가 됐고 해녀입도시기, 독도 도항 경로, 어업방법, 시기별 어업 연구가 없다"고 설명했다.

특히 독도 해녀를 " 독도의용수비대를 도운 '도우미', '천박한 여성'으로 인식하고 있다"며 "독도의용수비대와 함께 국토 수호에 적극 앞장선 독도 해녀, 나눔을 적극 실천한 독도해녀에 대해 영토 수호를 여성 활동에서 부각한 연구가 필요하고 여성 인권 차원에서 다각적인 독도 해녀 연구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김 부장은 또 "우리 한국은 독도를 '독도'라고 부르고 있지만, 독도는 세계 지도에서 '리앙크루 락스'(Liancourt Rocks)로 기록돼 있으며 일본은 '다케시마'로 부르고 있다. 독도에 대해 3개의 이름이 있다는 것"이라며 "서양 사람들은 '리앙크루 락스'에 대한 부가 설명으로 '한국이 행정구역을 지니고 있지만, 이 지역은 영토 분쟁 지역이다'라고 기록했다. 또 독도가 누구의 땅이냐고 물었을 때 모르겠다고 답하는 이들이 절반인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러한 지역인 독도를 해방 이후 20대 초반의 젊은 제주 해녀들이 출향 물질을 떠나 밥을 지어 먹고 물질과 어로활동을 했다는 것"이라며 "이는 독도에 대한 실효적 지배라는 의미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해녀 고령화… 온전한 기록 위해 시급한 자료 수집을"

제주해녀들의 독도 출향 물질의 의의를 온전히 기록하기 위해서는 해녀들의 고령화 추세를 감안, 시급한 자료 수집이 요구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강다혜 한라일보 기자(독도해녀취재팀)는 '독도 출향 해녀, 기억의 기록' 주제 발제를 통해 포항·울릉도 등지를 찾아 울릉도·독도 출향 해녀를 만나 물질 경험을 취재했던 경험과 일본 오키섬 취재 기록을 공유했다. 독도·울릉도 출향 물질 경험이 있는 협재리 해녀 등의 목소리를 담은 인터뷰 내용도 함께 전했다.

강 기자는 지난해 독도 출향 해녀 취재 과정에서 인터뷰한 해녀들의 사례를 전하며 하도리 부춘자 해녀, 협재리 임영자 해녀, 비양도 김명자 해녀의 목소리를 전했다.

강 기자는 "시대별 해녀들의 독도에 대한 세세한 기억 제각각. 독도의 튼실한 미역, 대왕문어 등 풍부한 수산물의 기억은 모두 일치했다"라며 "특히 강치(독도 바다사자)가 바위에 앉아서 피범벅된 채로 새끼를 낳거나, 해녀들이 숙식하는 동굴(물골)에 들어와 태풍을 피하는 장면 등 강치에 대한 기억은 수십년이 지났음에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울릉도·독도 해양연구기지 김윤배 대장의 인터뷰를 인용해 "제주해녀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는 등 뒤늦게 평가를 받고 있지만 오랫동안 감추고 싶었던 직업이었던 게 분명한 사실이라고 한다"며 "이에 해녀들의 자긍심을 올려주는 작업이 지속적으로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또 일본 오키섬 취재기를 전하며 "제주에서 울릉도로 가서 물질하며 생계를 이어가던 제주 출신 해녀가 울릉도 남자를 만나서 일본 오키섬에 가 물질을 이어갔다는 기록을 확보했다"며 "당시 오키섬에 간 해녀는 보통 2~3명의 일을 혼자서 해내는 등 현지인들에게 인정을 받았다고 한다"고 전했다.

강 기자는 "도내 독도 출향 해녀에 대한 미흡해 관련 정보를 얻기에 한계가 있고, 독도 출향 해녀 고령화로 도내 또는 도외에서 취재 및 데이터베이스 구축이 시급한 점을 감안해 관련 작업을 진행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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