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새벽의 모든'. [한라일보] 그대를 만나고 그대의 머릿결을 만질 수가 있어서, 그대와 마주보며 숨을 쉴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가수 이적은 노래한 바 있다. 다행이라니, 그건 기적이 아닌가. 세상의 수많은 손과 머릿결 중에 어떻게 두 존재가 다행인 상태로 만날 수 있었는지, 각각의 다른 숨이 어떤 이유로 고요하게 함께의 상태일 수 있는지 나는 언제나 신기하고 궁금하다. 가끔은 이러한 기적 같은 인연이 운명적인 연인이 되는 끈끈한 관계들이 보여주는 아름다움이 다소 휘황찬란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 번쩍이는 황홀한 접촉이 이루어지지 않은 일상적인 상태에서 인간은 거의 매일 혼자만의 세계를 짊어지고 걸어간다. 누군가와 부딪히기 싫어서 안간힘을 쓰며 세상 속을 움츠리고 걷는 일이, 나의 존재를 굳이 드러내고 싶지 않아 보호색의 착장으로 무장하는 일이 어쩌면 사랑보다 더 흔하고 절박한 이 대도시에서의 생존법이 아닐까. 전작인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을 통해 관객들에게 '인간적인 기량'에 대해 묵직하고 차분한 질문을 던진 바 있는 미야케 쇼 감독의 신작 '새벽의 모든'은 PMS(생리전증후군)때문에 종종 스스로를 통제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는 후지사와와 공황 장애를 앓고 있어 타인과의 접촉면을 넓히지 않는 야마조에의 이야기다. 쿠리타 과학이라는 회사에서 동료로 만난 두 사람은 여러모로 다르다. 반복되는 자신의 실수를 사과하기 위해 매번 작은 선물들을 준비하는 후지사와가 의도치 않게 민폐를 끼치는 스스로와 고군분투를 하는 쪽이라면 야마조에는 미연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운신의 폭을 최대한 좁게 만들고 타인의 세계와의 접촉면을 조금도 허락하지 않으려는 완벽주의적인 유형이다. 이렇듯 생존을 위해 두 사람이 선택한 방법은 다르지만 방향은 같다. 살아가고 싶다는 것, 조금만 더 편안하게, 숨 쉴 수 있는 상태로. 둘의 고통은 각자에게 너무나 절박하지만 타인의 육안으로 금새 가늠할 유형이 아니기에 두 사람은 관계와 사회 속에서 닮은 서로를 천천히 알아본다. 그러나 알아 보기만 해서는 알 수 없는 일들이 당연히 있기 마련이고 그때부터 후지사와와 야마조에라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던 두 별은 다른 서로를 조금 닮은 우리로 호명할 수 있는 시작을 하게 된다. 타인을 이해하는 일, 특히 타인의 고통을 나의 것처럼 여기는 일은 대개는 매우 어렵고 다소 위험하기도 하다. 모든 개인마다 갖고 있는 통점이 다르고 각자가 고통을 감각하는 정도도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타인에 고통에 근접하는 일은 섣불러도 뒤늦어도 후회를 남긴다. 우리는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저마다의 고통과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드러내지 않아도 누구 하나 멍 자욱 없이 살아가는 이는 없다. 또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소셜네트워크라는 '편집된 또 하나의 세계'를 창으로 마주하면서 타인의 서사에 점점 무감해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장 안에 담긴 순간의 아름다움, 몇 줄의 문장 안에 담긴 거두절미한 뼈대만 보고 타인의 상태를 평가하는 일이 잦아진다. '좋겠다와 부럽다' 사이에는 종종 '안됐다와 화난다'가 끼어들곤 한다. 모두 손가락으로 흔적들을 스치면서 드는 순간적이고 일시적인 감정들이다. 쉽게 분노하고 빠르게 잊는 관성에 젖어 타인을 속내를 읽어낼 문해력을 갖추지 못한 채로 마주치지도 못하고 멀어지는 삶들이 도처에 있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기사제보 ▷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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