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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100] 3부 오름-(59)웃바메기오름과 알바메기오름
밤과 무관한 바메기오름, 연원은 바로 이것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입력 : 2024. 10.15. 03:10:00
축막(軸幕), 뉴악으로 표기
왜 어려운 한자를 동원해야 했나?


웃바메기오름의 위치는 조천읍 선흘리 산84번지다. 표고 416.8m, 자체높이는 137m이다. 마을에서는 보통 바메기(웃바매기, 알바매기)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데, 이는 밤알을 밤애기로 표현한 것이 바매기가 되지 않았나 하는 추측에서 온 것이다. 어느 오름 관련 연구서의 내용이다. 이처럼 밤 모양을 닮아서 붙은 이름이라는 설명이 대세다. 이에 동의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고전에는 어떻게 기록했나?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1530년 이래 수많은 역사서에 기록됐다. 중복되는 이름을 제외한 명칭은 밤오름, 소마기악(所磨其岳), 소막니악(所幕尼岳), 야막기(夜漠只), 율악(栗岳), 축막(軸幕), 파메기악(破塺只岳), 하뉴악 등 8개로 요약된다. 네이버 지도에 '윗밤오름', 카카오 지도에 '웃밤'으로 표기했다.

바메기오름, 앞에 보이는 오름을 웃바메기오름, 왼쪽 멀리 보이는 오름을 알바메기오름이라 부른다. 김찬수

그중 밤오름은 바메기를 밤(栗)처럼 생긴 오름이라는 뜻으로 보고 우리말로 표기한 것이다. 소마기악(所磨其岳), 소(所)는 '바 소'의 훈가자 '바'를 나타내기 위해 쓴 것이다. 여기에 마기(磨其)는 한자의 음만을 땄으므로 음가자다. 따라서 이 표기는 바메기를 나타내기 위해 훈가자와 음가자를 결합한 표기가 된다. 소막니악(所幕尼岳)도 같다. 야막기(夜漠只)는 야(夜)가 '밤 야'이므로 역시 바메기를 나타내기 위한 훈가자와 음가자의 결합 표기다.

율악(栗岳)은 훈가자 율(栗) 즉, '밤'과 오름 악(岳)으로 구성한 것이므로 바메기를 밤(栗)과 연관시킨 훈가자라 할 수 있다. 축막(軸幕)은 축(軸)의 훈이 바퀴 굴대이므로 바퀴 굴대의 첫 음 '바'만을 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막(幕)은 바메기의 메기를 나타내려고 쓴 것이므로 음가자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훈가자와 음가자 결합표기다.

바메기는 밤과 무관, 샘을 지시하는 미, 메, 매 지명의 하나

파메기악(破塺只岳)은 한자의 뜻과는 무관하게 음만을 동원한 것이므로 음가자 지명이다. 뉴악의 뉴 역시 바퀴 굴대이므로 바메기 훈가자와 훈독자 결합표기라 할 수 있다. 이런 내용을 종합해 보면 밤(栗)과는 무관한 지명임을 알 수 있다. 바메기가 명백히 밤(栗)을 지시하는 내용이라면 이렇게 어렵게 표기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이 오름이 밤을 닮은 것도 아니고 밤나무가 많은 것도 아니다. 그 어떤 면으로 보더라도 밤과는 연관이 없다.

웃바메기오름 샘, 분화구에서 샘이 솟는다. 지금은 많이 줄었으나 과거에는 수량이 풍부했었다고 한다. 김찬수

바메기라는 지명이 밤톨과 모양이 닮았다 해서 붙은 이름이라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는 의견이란 다음과 같다. 바메기가 밤을 닮았다는 주장에도 동의할 수 없고 지명의 변천으로 볼 때도 밤과 어떤 관련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그러므로 바메기라는 지명은 그 자체로 고유한 어휘이거나 '바(또는 밤)+메기'의 구성일 것이라는 이견을 제시한다. 여기서 '-메기'는 산이나 언덕, 등성이를 이루는 곳에 붙는 제주어 지명 접미사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나 정작 '밤'이 무슨 뜻인지에 대해서는 모른다는 것이 결론이다.

사실 바메기의 지명은 '바+메+기'의 구조다. 여기서 '기'는 지명 접미사다. 흔히 지(只), 기(己), 지(支), 기(岐)로 나타나는데 이 한자 표기들은 모두 똑같이 '기'로 발음한다. '메'는 앞서 설명한 '물'의 의미다. 제주어에서 미, 메, 매 등은 산을 의미한다는 주장을 흔히 접하게 되지만, 이들은 모두 물, 그중에서도 샘을 의미한다.

샘이 솟아나는 기울어진 오름, 중요한 건 샘이다

큰바메기오름은 인근에 벵듸못을 비롯한 커다란 호수들을 거느리고 있다. 분화구에는 수량이 풍부한 샘이 솟아나고 이 물이 못을 형성한다. 바메기의 '메'는 바로 이 샘을 가리킨다. 나머지 문제는 밤에 있다. 바메기오름은 한쪽으로 심히 기울어진 형태다. 이같이 산이나 언덕이 한쪽으로 몹시 가파르게 기울어진 곳을 비탈이라 한다. 비탈은 어원적으로 볼 때 비스/비사/빗-(橫/斜)에 높은 곳을 뜻하는 '-달'의 복합어다. 이 비스/빗은 바로 곧지 않게, 가로 비스듬히 라는 뜻이다. 이런 형태의 산이면서 샘을 가졌으니 원래 '빗매기'였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흔히 접두어처럼 쓰이는 '빗'은 고어형이 '비ㅅ'이고, 이 말은 소급형이 '비△'이다. 이는 음운의 변화로 '비△ㅏ'가 되고, 여기에 '메'가 붙게 되면 '비△ㅏ+ㅅ메'가 된다. 이 발음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비앗메>바메'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한편 이런 음운 변화 외에도 고려할 만한 고어가 있다. 한청문감에는 '사(斜)'를 '비우다'라 했다. '사(斜)'는 '빗길 사'라고 한다. 그런데 이 말은 또 다른 말로 '비우다'라는 뜻도 있다는 것이다. 현대어 '기울다'에 대응한다. 그러므로 '기울어진'에 '메'가 붙으면 '비웃메>비앗메>바메>'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바메기오름은 바로 이렇게 분화 과정을 거친 지명이다.

이와 관련한 지명들은 제주도 내에 산재한다. 한 예로 '비애기골'이 있다. 서귀포시 상효동 1132번지 지경이다. 이곳은 모래기도 능선에서 하례2리 방향으로 심히 기울어져 골짜기를 이룬다. 지역에서는 '비애기골', '비학이골' 등으로 부른다. 풍수사들은 금계포란형이라면서 명당의 하나라고 그럴듯하게 설명하기도 한다. 비애기에서 병아리를 연상한 결과다. 그러나 이 이름은 '비△ㅏ기골'에서 유래한 것이다. 심히 기울어진 골짜기라는 뜻이다. 이처럼 바메기오름은 밤(栗)과 관련이 없다. 심히 기울어진 샘 오름이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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